그러나 그것은 감추기에는 너무나 큰 긴장과 흥분이었다. 시정에 영락되어 타락 생활을 거듭한 지도 십 수 년, 웬만한 감정은 모두 감추어 버리고 그런 기색도 나타내지 않는 흥선이었다. 그러나 이 날의 흥분뿐은 감추려야 감추려야 끝끝내 감출 수가 없었다.
그사이 갖은 수모를 다 받으며 갖은 욕을 다 먹으며, 그래도 그 모든 일을 참고, 귀찮고 쓴 세상을 그냥 살아온 것은, 장래 어떤 때 오늘 같은 날이 혹은 이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을 막연히 기다리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그 날이 올 줄은 뜻도 안 하였던 바였다. 혹은 올지도 알 수 없는 바라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모는 쓴 일을 쓰다 하지 않고 받아 오던 것에 지나지 못한다.
돌아보아야 튼튼하고 뿌리 박힌 김문의 세상에서, 언제 자기의 위에 꽃필 날이 올 듯하지도 않았다. 어서 길을 뚫고 어떻게 나아가야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막연히 바라며 구체적으로는 스스로도 코웃음치며 기다리던 날이, 이제 돌연히 그의 위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복은 누워서 기다린다는 속담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복은 흥선에게 있어서도 너무도 급속적이었다. 너무도 의외였다.
바라면서도 또한 스스로 부인하던 이 복이 홀연히 자기의 위에 떨어지기 때문에, 흥선은 아무리 감추려야 자기의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성하를 돌려 보냈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알고자 웃목에 읍하고 서 있는 성하에게, 아무 말도 알리지 않고 그냥 돌려 보냈다.
성하를 돌려 보낸 다음에 흥선은 비로소 옷을 모두 편복으로 갈아 입었다.
앉아 있으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흥분이었다. 그러나 일어서니 또한 어떻게 할 바를 알 수 없는 흥분이었다.
큰 소리로 외쳐서 자기의 이 흥분을 남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이 연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큰 소리는커녕 작은 소리로라도 남에게는 절대 알릴 수가 없는 흥분이었다. 한 번 남에게 알리어서 그 소문이 퍼지기만 하였다가는 자기의 위에 어떤 박해가 미칠지는 잘 아는 바였다.
흥선은 앉았다가는 일어섰다. 일어섰다가는 앉았다. 방안을 거닐다가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러나 담배가 타기 전에 도로 내어던지고 하였다. 자기로도 자기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분간을 하지 못하였다.
어떤 시골 처녀가 내일이면 시집을 가는 그 전 날, 너무도 기뻐서 자기 집에 기르는 개를 붙들고 '개야, 나는 내일 시집간단다' 하였다는 심리를 이 때 흥선은 맛보았다. 오래 벼르고 기다리던 일―그러나 또한 당분간은 남에게 절대로 알릴 수 없는 비밀한 이 일에 흥분된 흥선은, 자기의 몸을 바로잡지를 못하고 마음이 들떠서 일어났다 앉았다 안돈되지 못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마음이 이렇게 들떠서 돌아갈 때에 누가 흥선을 찾아 왔다면 흥선은 그 때는 그 사람을 붙들고,
“여보게, 대비마마와 밀약이 성립됐네. 나는 멀지 않아서 대원군이 되네.”
하고 자랑을 하였을는지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