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어떤 수모를 받고 어떤 눈물나는 일을 당할지라도, 자기의 모든 감정을 죽여 버리고 참기를 위주하였지만, 흥선은 그것은 부족하게 생각하였다. 너무도 용히 참기 때문에 도리어 저쪽의 의심을 살는지도 알 수가 없으므로, 흥선은 차차 성낼 만한 일에는 성을 내었다. 저편 쪽에서 무슨 불쾌한 일을 하면 불끈 성을 내며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하고 하였다.
지금 자기의 몸은 귀하기가 짝이 없는 몸이었다. 이전에 막연히 기대할 때와 달라서, 지금은 정작으로 그것을 기다릴 지위에 서게 되었다. 대비와는 굳은 밀약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자기의 몸은 지금은 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몸이다. 그런지라, 어떤 추태를 연출하면서라도 당분간은 속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 막연히 기다릴 때는 김문의 교태가 성도 나고 김문의 수모가 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정된 지금에 있어서는, 그 교태 그 수모가 흥선에게는 도리어 코웃음밖에는 나지 않았다. 너희의 세도도 며칠이 남지 않았으니, 그 동안 마음껏 놀아 보라는 생각이 늘 들고 하였다. 이 코웃음나는 일을 흥선은 노염으로 대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불평을 말하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표면 이전보다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 이면으로는 흥선은 '그 날'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정에 영락되어 돌아 다니는 몇 해―이 공자는 고귀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평 불만이며, 그 성격이며, 생활 상태며 심리 등을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며 동기며 경로 등을 다 알고 있었다.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서 그냥 귀한 공자로서 길러난 사람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모든 제도상의 결함이며 제도 운행상의 결함을 다 잘 알고 있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한 일로 알고 행하며, 또 이론상으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이 그 실행된 뒤에는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되는지―이것은 위엣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아랫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다만 위와 아래를 골고루 다녀 본 사람이라야 처음으로 알 일이다.
고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영락된 무리들과 섞이어 논 흥선은 위엣일과 아랫일에 모두 짐작이 갔다. 그리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하였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 것을, 그러지 않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두 짐작이 되었다.
누가 매관 매작을 한다. 마음이 착하던 사람도 매관 매작을 할 지위에 서기만 하면 반드시 매관 매작을 한다. 그러면 그는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가?
아주 현명하다는 일컬음을 듣던 누가 어떤 곳 수령으로 가게 되면, 거기서는 반드시 명목 없는 세납을 받아 올린다,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을망정,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그 현명하다던 사람은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하였나?
여기 제도상의 결함이 있었다. 학정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그 원인은 '제도'에 있었다. 제도의 결함 때문에 그들은 자기네들도 자기네의 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줄 알면서도, 그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도의 결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들은 그 관원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자, 이것 보게.”
흥선은 자기 앞에 놓인 대전통편(大典通編)을 펴 보였다. 성하는 흥선의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一, 정一품…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
二, 종一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三, 정二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四, 종二품…쌀 한 섬 열 한 말, 콩 한 섬 닷 말
五, 정三품…쌀 한 섬 아홉 말, 콩 한 섬 두 말
六, 종三품…쌀 한 섬 닷 말, 콩 한 섬 두 말
七, 정四품 종四품…쌀 한 섬 두 말, 콩 열 서 말
八, 정五품 종五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九, 정六품 종六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十, 정七품 종七품…쌀 열 서 말, 콩 여섯 말
十一, 정八품 종八품…쌀 열 두 말, 콩 닷 말
十二, 정九품 종九품…쌀 열 말, 콩 닷 말
(대군―大君에게는 봄 석 달에 섬을 더 줌)
(흉년에는 더 감할 경우도 있음)
그것은 당시 정일품(正一品부터 종구품(從九品)까지 열 여덟 계급의 녹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