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 일문의 의심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도,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할 때도 흔히 있었다.

 

그 어떤 날 흥선이 여전히 잔뜩 취하여 김병기의 집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 때 병기의 문갑 위에 선원보(璿源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는 그것을 무심히 보았다. 선원보가 한 권 놓여 있거니 이만큼 보아 두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김좌근의 집을 찾으매 좌근의 정침에도 선원보가 있었다.

 

여기서 흥선은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흥흥 코웃음쳤다.

 

무른 그럴 것이다.

 

건국 근 오백 년, 처음에는 한 분에게서 퍼진 자손이나 지금은 적지 않은 수효로서, 이 적잖은 왕족은 선원보를 뒤적여 보지 않고는 상고할 수가 없다. 그만큼 왕족들의 존재는 미약하였던 것이다.

 

표면 태평을 노래하는 그들이었지만, 내심 갈팡질팡하는 꼴이 역연히 보였다. 자기네의 일당의 한 사람인 김문근의 따님(왕비)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하기만 하면 이 이상의 안심되는 일이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김씨 일문은 과연 앞길이 막혔다. 왕자가 탄생하지 못할 줄을 미리 짐작이라도 하였지만, 다른 왕족 중에라도 그럴 듯한 사람을 어름어름하여 두었을 것이어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왕족이라는 왕족에게는 모두 고약하게 대접을 하여서 서로 원수와 같이 되어 있는 지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래도 자기네 일족에게 그다지 악감을 가지지 않은 왕족이 행여 어디 있지나 않은가 하고 그들은 '선원보'를 상고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선원보를 상고하여 거기서 요행 김씨 일문에게 악감을 가진 듯한 왕족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동궁에 책립하기에는 조 대비의 응낙이 있어야 한다. 이미 흥선과 밀약이 성립된 조 대비는 김씨 일문의 의견을 응낙을 할 까닭이 없다.

 

골라 내어도 없을 것이고, 비록 있다 할지라도 조 대비가 응낙하지 않을 일을, 그래도 행여나 하고 선원보를 상고하는 그들의 꼴이 흥선에게는 가여웠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선원보를 곁눈으로 보면서 얼근한 소리로 이렇게 읊고 있는 흥선의 속마음을 김씨 일문은 알 리가 없었다. 더구나 흥선이 이렇게 찾아 다니는 것이 밑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행동으로는 추측도 할 수가 없었다. 흥선과 그들은 온전히 딴 나라의 사람이었다.

 

그 해 가을, 가을 바람이 몹시 산산한 어떤 날 민치록(閔致祿)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 고해를 한 번 다녀 간 기념으로 금년 열 한 살 나는 어린 딸 하나를 남겨 놓은 뿐 쓰러지는 고목과 같이 거꾸러졌다.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없는 그의 임종을 보아 준 사람은, 그의 양아들로 들어온 민승호와 승호의 누님되는 흥선 부인과 그의 어린 민 소저 뿐이었다.

 

“조카님. 부탁이오. 이 천애의 고아―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가련한 애를 가꾸고 길러 주시오. 이것이 마음에 걸려 눈이 감기지를 않는구려.”

 

야윈 얼굴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이 당부를 한 뒤에 얼굴의 주름살을 펴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을 떠났다.

 

초라한 그의 장례를 따른 사람은 흥선 내외와 민승호의 오누이뿐이었다. 이것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떡을 앞에 놓고 죽기까지 서로 맹렬한 투쟁을 계속한 흥선대원군과 민 중전의 그 첫 대면이었다.

 

흥선은 민 소저를 보았다. 숭굴숭굴 얽기는 하였지만 영특하게 생긴 소녀였다.

 

“몇 살이냐?”

 

“열 한 살이올씨다.”

 

“열 한 살, 열 한 살에 오늘부터 집안 주인노릇을 해야겠구나. 애처러워라! 승호야. 네 책임이 크다. 고인의 유탁이려니와 네 친누이보다도 더욱 마음을 써야 한다.”

 

흥선은 흰 댕기를 늘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승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