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전을 처치한 데 대해서는 지금 민간에서 말이 꽤 많다. 공공연히 이하전의 원죄를 역설하는 사람도 차차 생겨났다.
그런 위에 이제 또한 흥선을 '역모'라 하여 처치하여 버리면, 세상이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흥선은 세상이 다 아는 판박이 무뢰한, 이 무뢰한을 역모라 하여도 세상이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김가들이 왕족을 모조리 차례로 없이하려는 행동이다.”
당연히 이렇게 볼 것이지, 흥선 같은 인물이 역모를 하리라고는 삼척 동자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매 흥선의 정체를 들어서 일족에게 호소를 한다는 일의 십중 팔구는 남의 웃음이나 사는 행동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영어는 둘째 길을 밟기로 하였다.
아직껏 자기네의 일족 전부가 흥선을 웃고 수모하고 멸시하고 할 동안도, 영어 형제뿐은 흥선을 그렇게 대접치 않았다.
그런 허튼방이의 생활이 단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고육책인 줄 알고 그 심정에 동정하여, 모든 거만무쌍한 일족과 달리 그냥 우의를 계속한 것은 흥선도 알아 줄 것이다.
그 때는 단지 동정의 염으로서 교제를 계속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장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더욱 친밀히 흥선과 지내야겠다.
비록 일이 흥선의 마음대로 되지 못하여, 흥선이 끝끝내 일개의 무뢰한이라는 가면 아래 그의 일생을 마친다 할지라도 특별히 손해는 없는 일이요, 만약 장래에 마음대로 되어서 이 잠자는 호랑이가 포함성을 지르며 일어나는 일이 있다 하면, 지금의 크지 않은 동정은 그 날 놀라운 열매를 맺어, 영어 자기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이리하여 영어는 모든 일을 알고도 모른 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난행을 하는 흥선과 그냥 따뜻한 우의를 계속하기로 작정하였다.
흥선의 둘째아들 재황 소년에게 대하여 아직껏 무심히(단지 순전한 동정으로) 써 오던 호의가, 장래 어떤 결과로서 자기에게로 돌아올는지, 영어는 그것을 고요히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 놀라운 사건(장래 이 일족의 운명을 좌우할)을 일족에게 피력하지 않고 혼자 알아 둔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권세의 대립'이라는 것이었다.
김좌근, 김병기 부자의 권세와 김병학, 김병국 형제의 권세가 차차 대립되어 첨예화하고, 그 때문에 일족의 사이가 좀 벌어진 것도 이 사건을 병국이 혼자서 알아 두고 다른 데 말하지 않은 커다란 이유의 하나였다.
“단언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점으로 보아서 혹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영어였다.
그의 형 영초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영어가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형님도 짐작하시겠지요? 젊었을 때의 흥선군이 얼마나 사람이 분명하고 강직했었는지―그런데 아무런들 사람이 그렇게까지야 갑자기 변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