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하가 잠이 든 지 조금 지나서 흥선이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고 아래 위를 한 번 살핀 뒤에 흥선은 일어났다. 술에 과히 취하였기 때문에 쪼개지는 듯이 골치가 쏘았다. 흥선은 눈살을 연하여 찌푸리며 가만히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마루에 걸터앉아서 두어 번 숨을 깊이 들이 쉬었다.

 

“여봐라, 이리 오너라!”

 

성하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소리로 청지기를 찾았다. 그리고 청지기에게,

 

“세수물 떠다가 이 마루에 놓아라.”

 

고 명하였다.

 

시원하게 활활 얼굴을 씻고 나니, 골치 쏘는 것은 좀 낮고 취기도 좀 깨었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나서 흥선은 대청으로 지필을 내어 오래 가지고 거기서 편지를 한 장 썼다. 그리고 하인을 불러서,

 

“이 편지를 사동 김 판서 댁에 갖다 드려라.”

 

하고 편지를 내어 주었다. 사동 김 판서라 함은 영어 김병국을 가리킴이었다.

 

그런 뒤에 자기는 청지기 응원이를 데리고 침방으로 들어갔다. 침방에서 다시 정침으로 나올 때는, 흥선은 전날의 거리의 부랑자 이하응이가 아니요, 정일품 현록대부(顯祿大夫) 흥선군 이하응이었다. 옥색 관복에 서대(犀帶)를 띠고 사모를 쓰고 홀을 든 이 공자―옷에서는 복온(馥溫)한 훈향(燻香)내가 피어오르며, 그 속옷은 비록 무명옷이나마 최근에 새로 지은 듯한 관복이며 사모며는, 흥선으로 하여금 전날의 거리의 부랑자 이하응의 흔적을 없이하고, 영종의 고손 왕족 흥선군의 위엄을 갖게 하였다. 가까운 장래에 사용할 것을 예기하고 관복을 새로지어 두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흥선은 아랫목으로 내려가서 곤하게 벽에 기대고 잠자는 성하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스로 미소하였다. 성하가 깨면 반드시 놀랄 것을 예기하고― 잠시 뒤에 청지가가 가만히 문을 열었다.

 

“다 대령됐습니다.”

 

“부족이 없는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