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은 한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동복이 들어와서 백통 촛대에 촛불을 켜 놓고 나가기까지 흥정은 결말이 나지 않았다. 드디어 최 장의가 이런 말을 꺼내게까지 되었다.
“대감, 대감 댁 도령님 지필가(紙筆價)로 남성사서 한 삼천 냥 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담배만 뻐근뻐근 빨고 있던 병기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의 눈에는 노염이 타올랐다. 병기는 고요히 말하였다.
“여보게!”
“네?”
“아직 젊은 사람이니 용서해 주거니와, 다시는 그런 버릇 없는 말 입 밖에 내지 말게. 내 자식은 아직 조상을 팔아서 지필을 살이만치 궁하지 않았네.”
그리고 거기 대하여 최 장의가 놀라서 무슨 변명을 하렬 때에, 병기는 내리 누르듯이 말을 계속하였다.
“아무리 나이가 못 들었기로서니 선비의 처신에 그만 지각도 없을 까닭은 없겠지. 썩 돌아가게. 오늘 밤으로 김천으로 내려가게. 에이! 고약한 사람 같으니…”
그리고는 담뱃대를 들고 일어서서 내실로 들어가 버렸다.
병기는 내실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오늘 밤은 내실에서 자겠노라는 뜻을 눈짓으로 부인에게 알게 한 뒤에, 천천히 다시 사랑으로 나왔다. 그것은 아까 병기가 최 장의를 버려 두고 내실로 들어갔던 때부터 약 한 시각쯤 뒤로서, 해시(亥時)가 거의 된 때였다.
병기는 나와서 세간 청지기를 불렀다. 대령한 청지기에게 향하여,
“김천 최가는 갔느냐?”
고 물었다.
“아직 외사에 있습니다.”
“음, 고약한 사람 같으니…”
병기는 아직도 괘씸하다는 듯이 입맛을 쩍쩍 다시며 문갑 위에 놓여 있는 주판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양 두돈 오푼, 양 두돈 오 푼을 몇 번을 놓다가 그것을 멈추고, 천(千) 줄에다가 위에 한 알, 아래 두 알을 놓아서 칠천이라는 수효를 나타내어 가지고 물끄러미 주판을 굽어 보았다. 이 주판은 청지기도 넉넉히 볼 수 있도록 조금 밖쪽으로 젖혀 가지고―
그리고 잠시 가만 있다가, 청지기에게 도로 물러 가기를 명하고, 동복을 불러서 좌초롱에 불을 켜서 앞세우고 내실로 들어갔다. 병기가 내실로 들어간 뒤에 사랑 조용한 한 방에서는 김천 선비와 병기 댁 세간 청지기의 사이에 흥정이 시작되었다.
상의(商議)가 거듭되고 거듭되어 야반에 이르기까지 거듭된 결과 남성사에서는 김병기에서 구천 냥(만 냥이 아니면 안 될 것이로되, 청지기가 특별히 대감께 잘 알선하여 구천 냥에 떨구겠다고 장담하고)을 바치고, 남성사에는 충문공의 위패를 모시게 하도록 하여 주겠다는 약속이 성립되었다. 그 구전으로 청지기에게 남성사에서 삼백 냥을 뇌물하였다.
남성사에서는 병기 댁 청지기에게 구천 삼백 냥을 드렸다. 청지기가 맡은 치부책에는 남성사 앞으로 칠천 냥이 적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에 영의정 김좌근의 상계로서 김천 남성사에 충문공의 위패를 모시는 사액(賜額)을 할 것이 윤허(允許)되었다.
그러나 그 윤허가 내리기 전에 벌써 남성사의 하인들은 각곳으로 헤어져서, 근린의 돈냥이나 있는 사람들을 모두 김천 읍으로 잡아다가 가두었다. 그리고 거기서는 또 다른 상의(商議)가 진행되고 있었다.
윤허가 내린 때쯤은 가난하고 가난하던 남성사는, 어느 덧 천 석에 가까운 제전이며 많은 산림을 소유하게 되었고, 여기저기 비싼 이자로써 빚을 줄 돈도 꽤 많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