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최 장의의 얼굴에는 낙심의 표정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만한 인사상의 거절은 미리부터 각오하고 왔던 모양이었다. 최 장의는 도포 자락을 좀더 헤치며 조금 나앉았다.

 

“대감, 길을 헛들은 줄은 소인도 모르는 바가 아니올씨다. 그렇지만 다른 데 청을 드리기보다는 그 어른의 사손되시는 대감께 드리는 편이 좋겠읍고, 더구나 만약 그 어른의 사손이 안 계시면여니와, 계실뿐더러 현관으로 계신 이상에야 어찌 다른 곳을 찾게 되겠습니까? 다른 곳을 찾는다 할지라도 순서로서 대감께서 그 곳을 손수 지시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병기는 담배를 대에 담았다. 그리고 부시쌈지를 얻으려고 허리춤을 만졌다. 그러매 최 장의가 영외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뛰어 들어와서, 어느 틈에 꺼내었는지 자기의 부싯돌로 쑥에 불을 일으켰다. 쑥에 붙였던 불은 유황 성냥으로 옮아 갔다. 그 불을 최 장의는 양 손으로 읍하고 기다란 병기의 담뱃대 끝에 달린 대통에 대었다.

 

뻑 뻑, 힘있게 담배를 빨면서 병기는 눈을 굴려서 최 장의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쥐와 같이 생긴 얼굴이었다. 노란 수염이 몇 올 코 아래의 턱에 났으며, 하관이 빠른 그의 얼굴은, 사람을 비웃는 듯한, 또는 간사한 듯한, 그렇지 않으면 아첨하는 듯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고지식하지 않고, 꾀 많고 간사하게 생긴 이 얼굴을 병기는 만족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이제 진행되려는 일에 있어서는, 고지식한 인물이 제일 다루기 힘들고 어려움을 병기는 오랜 경험으로 잘 알았다.

 

향그러운 삼등초는 최 장의의 켜 든 성냥 아래서 피어 올랐다. 최 장의는 한 번 엄지손가락으로 담배의 뿌리를 눌러서 자리를 잡아 놓은 뒤에 다시 성냥에 불을 옮겨서 대었다.

 

눈치 덩어리였다. 병기는 만족하였다. 대감께 담배를 다 붙여 올린 뒤에, 최 장의는 그냥 허리를 구부린 채, 뒷걸음쳐서 아까의 자리로 돌아갔다. 병기는 담배를 한 번 힘껏 빨아서, 그 연기로서 제 얼굴 전면을 감추면서 말하였다.

 

“최 장의!”

 

“네?”

 

“내가 그 어른의 사손이니깐 더욱 그런 일을 간섭하기 어렵지 않나? 밟을 길을 밟게. 내게는 귀찮게 굴지 말게.”

 

이런 말에 떨어질 최 장의가 아니었다. 또한 이런 말에 떨어질 사람이 아님을 알았기에 병기는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처음 뵙고 너무 조릅니다마는 대감밖에는 이 일을 주장해 주실 분이 안 계십니다. 다른 길을 밟는다 해도 대감께서 지도해 주셔야 할 것이옵고, 그만둔다 할지라도 대감의 지시만 받을 것이옵고… 소인은 모릅니다, 대감께 매달려 조르고 억지 쓸 따름이올씨다.”

 

“허! 이 사람, 감질 났네그려. 그럼 내 편지…”

 

“아니올씨다. 소인은 대감밖에는 모릅니다. 죽여도 대감께서 죽이시고, 살려도 대감께서 살리셔야지 다른 데는 모릅니다. 대감께서 응낙하시기까지는 소인은 열흘이고 한 달이고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병기는 고소(苦笑, 쓴웃음)하였다. 웃으면 홍소(哄笑)―그렇지 않으면 근엄한 얼굴을 하고 있는 병기에게 있어서 고소라 하는 웃음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돈―금액에 대하여는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병기 측에서는 최 장의가 꺼내기를 기다렸다. 최 장의 측에서는 대감이 꺼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금액이라는 문제를 가운데 놓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그 주위만 뱅뱅 돌았다.

 

이런 흥정에 있어서 최 장의는 상당한 수완을 가진 인물인 모양이었다. 천병만마지간을 다 다닌 병기도 그 수완을 넉넉하다 보았다. 그것은 구렁이와 여우와의 승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