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감사도 먹기는 좀 먹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석경원이가 먹은 것이었다. 좌우간 겨우 삼백 냥이란 돈을 마련하여 이방 자리를 산 석경원은, 이방 십 오년 간에 삼천 석이라 하는 거대한 재산을 움켜 잡은 것이었다.

 

재산 전부를 석경원한테 앗기운 이 장의 집안은, 그 뒤 십 년 간을 이리저리 굴러 다니면서 숱한 고생을 다 겪었다. 그러다가 금년 봄에 어떻게 어떻게 하여, 집안 오대조를 팔아서 사충사 일유사를 얻어 하게 되었다. 일유사가 되면서, 학사가 제일 첫 번 조를 찍은 것은 철천지 원수 석경원 압래장이었다. 석경원은 이 위대한 권세를 가진 종이 조각 때문에 한성부에 갇히게 되었다.

 

흥정은 시작되었다. 백 석지기를 사총사에 비치리다, 이백 석 바치리다, 삼백 석 바치리다. 석의 아들이 찾아와서 호소호소하는 것을 학사는 대번 고개를 가로 저어서 돌려 보냈다. 드디어 석은 학사의 만족할 만한 토지를 제하고야 백방이 되었다.

 

그러나 석의 재산을 홀짝 다 빨아서 거지를 만들기 전에는 학사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학사는 비밀리에 이 석을 천주 만동묘(萬東廟)로 넘겼다. 사충사에서 초벌 벗기운 석은 다시 만동묘에 또 한 벌 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동묘에도 만족할 만한 뇌물을 바치고 겨우 백방이 된 때는, 학사의 비밀 활동으로 또한 다른 서원이 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몇 군데 넘어가는 동안, 이방 십 오 년 간에 번 적지 않던 재산은, 모두 이 서원이며 저 서원으로 넘어가고, 하잘것없는 거지가 되어 버렸다.

 

이리하여 십여 년에 겪은 원혐을 학사는 사충사의 일유사가 되어 가지고 고대로 갚은 것이었다.

 

조―

 

한 개의 뿔 조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 이 학사의 십 년 전 원수를 갚아 준 것이었다.

 

“어떤가? 내가 못할 일을 했나? 다들 하는 노릇이고, 하게 마련된 노릇을 나 혼자 안 하면 어리석은 짓이라네.”

 

학사는 성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성하는 머리를 조금 들어서 학사의 오른편 옆에 놓여 있는 조를 보았다. 정목으로 만든 위에 명주 끈을 달고 주석으로 장식을 한 그 상자는, 옥새를 간직하는 그릇보다는 약간 손색이 있었으나, 지방 장관(長官)의 관인을 넣는 상자보다는 훨씬 더 치레를 하였다.

 

“조는 인주로 찍습니까?”

 

“먹으로 찍는다네.”

 

“아저씨 말씀은 알아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소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모두 좋지 못한 일을 하더라도, 남들이 한다고 그것이 좋은 일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옛날 재상은 죽은 뒤에 장례지낼 비용이 없는 것을 자랑했다 하지 않습니까? 그 마음을 아저씨께서는 본받으실 수가 없습니까? 제 소견으로는 높은 선비는 금전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지 않는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