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잡아 온 죄인을 일유사는 다시 이조(吏曹)나 한성판윤(漢城判尹)에게 곱게 가두어 두기를 촉탁한다. 그러면 이조에서나 한성부에서는 이를 거절하지를 못한다. 일유사에게서 다시 놓아 주라는 부탁이 오기까지는 까닭을 모르는 그 죄인을 곱게 가두어 둘 뿐이다.

 

본시는, 서원이라하는 것은 옛날의 성현들을 존경하기 위하여, 유인(儒人)들이 모여서 옛날의 성현들의 끼친 학문을 토구하며 성현들의 영을 제사하기 위하여 시작된 것이었다.

 

그 예절을 장려하기 위하여 서원을 유지할 만한 전장(田庄)을 기부받는 것을 허락하고, 그 서원의 서독의 어떤 정도까지의 권한을 인정하여 주었던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수백 년 내려오는 동안 본의는 잃고 말의(末意)만 남아서, 조선의 온갖 더럽고 추한 일은 모두 거기서 생겨나게까지 되었다.

 

이 서원의 횡포 때문에 당시의 백성들은 얼마나 괴로움을 받았다? 서원에 부속된 많고 많은 유의 유식의 선비들은, 모두 그 근처의 백성들의 고혈을 자기네의 당연히 먹을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의 사원은 서원이라기보다 오히려 악도청이었다.

 

본(本)을 모르고 말(末)만 아는 선비들이 그 서원을 근거삼아 가지고 행하는 폐단은 여간이 아니었다.

 

서원에서는 자기의 가진 권한을 이용하여, 시골 돈냥이나 있는 사람을 잡아다 가둔다. 명목은 아무것이라도 좋았다. 성현을 몰라본 죄라든가, 조상께 제사를 정성되게 못한 죄라든가, 하는 막연한 명목으로 잡아다가 가둔다. 그리고 그냥 내버려 둔다.

 

그러노라면 그 집의 아들이라든가 친척이 찾아와서 흥정을 한다. 서원에 얼마의 장전을 기부할 테니 이번만은 특별히 용서하여 주십사고 애걸복걸한다. 그러면 그 죄인의 재산에 상당한 기부를 받은 뒤에 그 죄인을 특별히 용서를 하여 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 근처에 돈냥이나 있어서 선비 노릇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장의를 판다. 사지 않으려면 강제로라도 판다. 이 강제 판매에 응치 않았다는 큰 코를 다치므로, 한 번 서원이 겨눈 이상에는 피하지를 못하는 것이다.

 

후일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면서, 그의 대 영단으로 전국의 서원을 모두 부수고, 서원에 모셨던 위패들을 모두 없이할 때에, 그 수효 천여 개, 거기 도의도식하던 무리가 수만 명이었다.

 

그들은 모두 서원을 근거삼아 가지고, 거기 모신 옛날 성현의 옷 소매를 방패삼아 가지고 온갖 더럽고 추한 일을 다하다가, 일이 불여의하게 되면 곧 옛날 성현을 앞장 세워서 이 사대성(事大性)이 많은 국민을 위협하던 것이었다.

 

사람을 죽일 권리는 없지만 잡아 가둘 권리는 있는 그들에게, 단지 포금죄(抱金罪) 밖에는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경옥이며 향옥에 갇혀서 신고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사충사 서독―

 

화양서원(華陽書院―충청도 청산에 있다)의 화약묵패(華陽墨牌)―

 

당시의 서원 가운데서도 가장 권위 있는 이런 몇 곳의 서독은 세력이 당당한 곳으로서, 옥새가 찍힌 왕령에 거의 지지 않을 만한 권세를 가졌던 것이다. 이조판서 한성판윤도, 일개 유생이 발행한 이 서독의 영을 거역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