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과 성하가 대비께 하직하고 물러나올 때에, 흥선은 기다란 숨을 내어 쉴 뿐 아무 말도 안 하였다.
성하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흥선을 따라서 흥선 댁으로 왔다. 남녀에서 내려서도 흥선은 성하를 돌아보지도 않고 주인을 맞는 청지기에게 행차(병국이에게 빌어 왔던)를 돌려 보내라는 간단한 명령을 할 뿐, 빠른 걸음으로 정침으로 들어갔다. 성하도 묵묵히 따라 들어갔다.
흥선은 옷을 갈아 입을 생각도 않고 그냥 아랫목에 내려가 앉았다. 근심스러운 얼굴이라기보다도, 만족하다는 얼굴이라기보다도―단지 평범하고 엄숙한 얼굴이었다.
성하는 문 안에 읍하고 섰다. 무엇이라 흥선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흥선은 성하의 존재도 모르는 듯이 잠자코 앉아 있었다. 숨소리도 고요하고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헴!”
성하는 혹은 흥선이 자기가 온 줄을 모르지나 않나 하여 기침을 하여 보았다. 흥선은 모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 증거로는 성하의 기침 소리에 한 순간 성하를 본 뒤에 다시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대비와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어떤 말을 들었으며 어떤 결과를 얻었나? 성하는 알 길이 없었다. 흥선의 표정으로써 짐작하여 보려 하였으나 그것도 실패했다.
평범하고 엄숙한 표정―그것은 일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나타나는 절망의 표정으로도 볼 수가 있는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일이 마음대로 된 뒤에 고요히 그 성공을 즐기고 있는 표정으로도 볼 수가 있었다.
이 알 수 없는 흥선의 표정 앞에 성하는 웃목에 읍하고 묵묵히 서 있을 뿐이었다. 성하에게 향하여 앉으란 말도 없었다. 그렇다고 또한 나가라는 말도 없었다. 마치 낮잠에서 깨어난 사람 모양으로 묵묵히 앉아 있었다. 예장(禮裝)을 갖추고 묵묵히 앉아 있는 흥선의 모양은, 어떻게 보면 사람의 미고소(微苦笑)조차 자아내는 것이었다.
이윽고 흥선은 담뱃대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담배 서랍으로 쓰는 나무 곽을 끌어당겼다. 흥선의 뜻으로서 보통 연죽보다 썩 짧게 만든 자기의 연죽에 담배를 담으면서야 비로소 흥선은 성하의 서 있는 편으로 머리를 돌렸다.
“여보게!”
“네?”
흥선의 인식을 받고야 성하도 비로소 꿇어앉았다.
“내 마음이 지금 어지러웨. 산란해서 앞뒤를 가릴 수가 없어. 머리가 뒤집히는 것 같아. 정신을 가다듬을 수가 없네.”
“대비께서는 무슨 말씀을 들으셨습니까?”
흥선은 눈을 감았다. 천천히 말을 하였다.
“별 말씀하시는 것이 없으시네. 나 같은 사람에게 무슨 별말씀을 하시겠나? 하여간 내 마음이 어지럽고 산란하고 갈피를 차릴 수가 없으니, 자네는 돌아가게. 언제 다시 와 주게. 그 때 다 말해 줌세.”
성하가 일어나서 하직을 고할 때에 흥선은 변명하듯이 말을 보태었다.
“노엽게 생각하거나 별다르게 생각 말게. 너무 마음이 어지러워서 좀 혼자 생각해 보려고 그러네.”
무슨 중대한 사건, 중대한 결과가 생긴 것뿐은 분명하였다. 그 흥선의 사람됨이 전염되었는지, 성하도 흥선의 집을 나서서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가슴이 산란하기가 짝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물어보아도 왜 산란한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