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손이의 사건에 나가해서 대비가 받아 보는 처음 조상이었다. 간단한 한 마디의 조상이나마 대비에게는 마음에 드는 조상인 모양이었다. 대비는 눈을 적이 굴려서 한참을 흥선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말이 끊어졌다. 그 뒤에 대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효명익황제(孝明翼皇帝)의 대는 끊어졌구려.”

 

지금의 상감은 대비의 지아버님인 익종의 뒤가 아니요 당신의 시아버님인 순조의 후사라 하는 뜻이었다. 죽은 인손이가 익종의 대를 이을 사람이었었다 하는 임시였다.

 

대비의 이 말에 대하여 흥선은 입에서 불끈 나오려던 말을 삼켰다. 삼켰다가 그냥 고요히 꺼내었다.

 

“대비마마! 호명황제의 어대를 이을 소년 하나를 신이 추천하오리까? 영특한 소년이옵니다. 제왕의 풍기를 가진 소년이옵니다. 아무 데를 내놓을지라도 결코 부끄럽지 않은 소년이옵니다.”

 

대비는 흥선의 이 말에 고요히 재쳐 물었다.

 

“누구오니까?”

 

“흥선의 둘째아들 제황이, 금년에 열 살 나는 애올씨다.”

 

“?”

 

“자식을 보기에 아비만한 눈이 없고, 제자를 보기에 스승만한 눈이 없사옵니다. 흥선이 비록 미련하오나 자식에 익애(溺愛)되어 그릇 볼 만치 둔하지는 않사옵니다. 사십 년 생애를 술과 허튼 노름으로 허송했습니다마는, 아비가 그렇게 자난 만치 자식은 그렇게 보내지 않게 하고자 애를 다 쓰고 힘을 다 써서 훈도한 공이 겨우 나타나서, 아비와 다른 영특하고 활달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커다란 운명이 그의 바로 한 뼘 앞에 늘어져 있는―지금의 권문 거족에게 짐승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얼굴에 떠오르는 피를 그냥 삭여 버리고 참고 지낸 것은 오늘이 장차 올 것을 얘기하였으므로가 아니었던가? 지금 바야흐로 눈 앞에 걸린 이 운명의 열매를 바라보면서 흥선은 죽을 힘을 다 썼다. 아직 어떤 수모를 받을지라도 눈 한번 껌뻑 감았다가 뜨면 스러져 버리던 흥선이로되, 지금 이 자리에서는 등으로 땀을 벌벌 흘렸다. 표면 아무 기교가 없이 대비에게 대하여 있는 흥선이로되, 한 마디 한 마디의 말도 모두 그 사이 오랜 기간을 닦고 갈고 깎고 하여, 준비하여 두었던 말이었다. 이 자리의 한 마디의 말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는 형언할 수도 없는 것이다.

 

대비는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뚫어질 듯이 흥선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동으로?

 

서로?

 

마음이 너무도 산란하기 때문에 얼굴에 장식하였던 평온한 미소가 사라지려는 것을 억지로 회복하면서, 흥선은 대비의 이 시험의 눈앞에 단정히 꿇어 앉아 있었다. 등과 가슴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만약 두 시간만 이렇게 앉아 있으라면, 흥선은 과도한 긴장 때문에 기절을 할 것이다.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