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구―ㅇ(鞠躬)

 

바―이―(拜)

 

흐―ㅇ(興)

 

평시―ㄴ(平身).”

 

작년(庚申年) 구월에 경희궁으로 이어하였던 상감은, 모든 궁인들을 인솔하고 금년 사월에야 다시 창덕궁으로 환어하였다. 환어한 뒤의 첫 번 숙배(肅拜)였다. 월대(月臺) 위에는 인의(引儀)가 높이 올라서 있다. 그 아래는 정일품부터 종구품까지의 열 여덟 개의 표석(表石)이 서 있고, 열 여덟 계단의 조신들은 각기 그 품반 품서에 서 있다.

 

“국구―ㅇ”

 

기다랗게 뽑은 인의의 호령에 백관들은 모두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바―이―”

 

두 번째의 호령에 뱍관들은 북향하여 절하였다.

 

“흐―ㅇ”

 

세 번째의 호령에 몸을 절반만큼 일으켰다.

 

“평시―ㄴ”

 

몸을 고쳐 일으켰다.

 

다시 국궁, 바이, 흥, 평신―이리하여 사배는 끝이 났다.

 

승후관(承候官)의 한 사람으로서 조성하도 이 숙배에 참례하였다.

 

숙배를 받은 뒤에 상감은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고 편전(便殿)으로 들었다.

 

성하는 승후청으로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관복을 편복으로 바꾸어 입고 잠시 더 머뭇거리다가, 금호문(金虎門)으로 하여 대궐 밖으로 나왔다. 이 날은 비번이므로 숙배만 끝낸 뒤에는 나와 버려도 괜찮은 날이었다.

 

궐 밖으로 나오기는 하였지만, 갑자기 갈 데가 없었다. 유난히도 마음이 어지러워서 집으로도 돌아가기가 싫었다. 성하는 하인과 가마만 먼저 돌려 보내고, 잠시 돈화문 밖으로 돌아와서 머뭇거리다가 발을 서쪽으로 돌렸다. 며칠 만에 흥선 댁이라도 한 번 찾아보고자 함이었다.

 

며칠 전 흥선을 모시고 대비를 가서 뵈온 이래, 성하는 그 뒤 아직 흥선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날의 인상은 성하에게 있어서는 꽤 컸다.

 

자기의 눈이 결코 잘못 보지 않았음을 성하는 그 날 확연히 알았다. 주착 없는 인물, 상갓집 개―이런 칭호를 들으면서도 탓하지 않는 흥선을, 성하는 아직껏 의심의 눈으로 보고, 흥선의 그런 인격의 배후에는 무슨 커다란 책략이 있지나 않은가고 늘 유심히 보았지만, 너무도 감쪽같이 속이므로 성하로서도 마지막에는 반신반의치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확실히 성하는 흥선의 진면목과 진인격을 보았다. 표면 어리석은 듯이 꾸미는 그 가면을 벗는 날―그 속에서 나온 흥선은 결코 주착 없는 술망나니가 아니었다. 염치 모르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 응대, 태도, 언어, 행동, 어느 점에 있어서도 대궐 안에서 생장한 대군왕자에게 지지 않는 단아한 귀인이었다.

 

이런 일면을 가진 그가 항간에 돌아다니며 하는 행동은 너무도 어지러운 행동이었다. 만약 그것이 김씨 일문을 속이는 가면이라면, 흥선이야말로 고금에 다시 없는 훌륭한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