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감과 우리와는 촌수로 보자면 육촌 형제―항간에서는 그다지 먼 일가가 아니건만, 우리는 왜 그다지도 소원히 지냅니까?”

 

왜 소원히 지내느냐? '저것을 좀 저편으로 밀어 주세요.'―지금부터 십 이 년 전,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이 대비의 무릎에 누워서 임종시에 어보(御寶)를 가리키며 한 말을 대비는 지금 추상하는 모양이었다. 어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모자지간 근친지간도 그것 때문에 이렇듯 소원해지지 않으면 안 되나? 명랑한 미소 아래서도 이 말을 할 때는 대비의 낯에는 한참 동안 적적한 빛이 흘렀다.

 

“육촌은 오촌보다 멀고 오촌은 사촌보다 멀지 않습니까? 골육지간에도 서로 다투는 세상이올씨다.”

 

“제발 우리는 좀더 가까이 지냅시다.”

 

하하하하! 큰 소리로 웃고 지껄이는 흥선이로되, 오늘 대비가 자기를 부른 데 대하여 좀 다른 기대를 가지고 있는 흥선은 대비의 일언 일구, 일동 일정을 모두 주의하여 보고 주의하여 들었다. 만약 대비로서 흥선의 어리석음을 이용하려면, 흥선은 자기를 어리석게 가장(假裝)할 것이요, 대비로서 흥선의 활달함을 이용하려면, 흥선은 자기를 활달하게 가장할 것이요, 대비로서 흥선의 '김문에 대한 악감'을 이용하려면, 흥선은 또한 그만큼 자기를 가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이라, 흥선은 대비의 손가락의 조그만 움직임이라도 주의하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흥선의 주의 가운데서 잠시간 그리하여 담이 계속되었다. 대비도 무슨 특별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흥선은 흥선으로서 바람 부는 대로 혹은 동으로 혹은 서으로 기울어질 따름이었다.

 

“대감! 종친 중에 인재 하나를 또 잃었구료!”

 

성하는 승후방으로 나가서 기다리라 하고, 모시는 여관들을 물리치고, 대비와 흥선 단 두 사람이 되었을 적에 대비는 비로소 이 말을 하였다.

 

흥선은 힐끗 대비를 쳐다보았다. 보다가 대비와 눈이 마주쳐서 황급히 눈을 도로 아래로 떨어뜨렸다.

 

“대비전마마, 신도…”

 

이렇게 말하고 잠시 끊었다가 계속하였다.

 

“그 날 밤―또 그 이튿날 밤을 잠을 이루지를 못했습니다.”

 

“대감도 혹은 짐작하시는지? 이 사람과 인손이―하전이의 사이를…”

 

“짐작하옵니다. 얼마나 심통하실까고. 황송합니다만, 신도 가까이 위로는 못 드리나마 혼자서 마음껏 애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