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과연 굴러 오는 복에 틀림이 없었다. 김씨 일문은 자기네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하전을 없이한 것이로되, 이하전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하전에게 내려지려던 복덩어리는 이제 십중 팔구는 흥선 자기에게 굴러올 것이다.

 

표면 난행을 거듭하면서도 이 날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조 대비의 조카 성하가 대비의 분부로 자기를 데리러 온 것이다. 위풍당당히 성하와 함께 창덕궁으로 가는 동안, 흥선의 얼굴은 희망과 기대로 빛났다. 그리고 어떤 정도까지의 자신도 가지고 있었다.

 

“왜 그간 한 법도 아니 오셨소?”

 

흥선의 절을 같이 몸을 일으켜서 받으면서, 대비는 비교적 명랑한 미소를 얼굴에 띄워 가지고 물었다.

 

“가난한 백성이라, 무사 분주하기 때문에 한 번두 문후를 못 했습니다. 성하를 통해서 대비전마마의 사연도 늘 알고 있었습니다마는…”

 

여전한 호활한 웃음은 그의 얼굴을 장식하였지만, 이날의 흥선은 전날의 무뢰한 이하응이 아니었다. 호활한 패기와 불기적 기상이 뚜렷이 나타나 있기는 하지만, 어디인가 종실 공자다운 단아함과 위엄이 갖추어 있었다.

 

“성하 너라도 좀 모시고 오지?”

 

대비가 말을 성하에게 돌리는 것을 흥선이 가로받았다.

 

“그 사이 성하는 여러 번 그 말씀을 하옵니다마는, 여가도 없고―사실을 말하자면 대비마마께 뵈올 만한 의대(衣帶)도 없었습니다. 하하하하! 벼르고 별러서 가난한 가운데서 뽑아 내서 이 의대 한 벌을 장만했습니다.”

 

흥선은 태도를 과장하여 가며 자기의 새 관복 소매를 들어 보였다. 옷이 없다든가 무엇이 부족하다든가 하는 것을 입 밖에 내기는커녕 생각하기조차 부끄러이 여기는 대궐 안에서, 자기의 소매를 들추면서, 옷이 없어서 그간 못 왔노라고 천연스러이 말하는 흥선의 태도는 도리어 유쾌하였다.

 

이 불기한 흥선의 태도를 대비는 연하여 상쾌한 미소를 얼굴에 나타내며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