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록대부 흥선군 이하응이 탈 만한 사인가마와 하인들을 (가난하기 때문에) 갖고 있지 못한 흥선은, 김병국에게 편지하여 가마와 하인들을 빌어온 것이었다.

 

잠시 뒤에 곤한 잠에서 깬 조성하는 아랫목의 흥선을 보고 놀랐다. 아랫목에 앉아 있는 흥선―그것은 어제그제 늘 보던 그 흥선이 아니었다. 옷뿐이 아니라, 그 온화한 듯한 가운데도 두 눈 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패기며 위압력이, 무서운 지배자가 아니고는 갖지 못하는 '왕자'로서의 위엄이었다.

 

“가난한 석파라 환옥 관자며, 호박 갓끈이 없네그려. 그렇다고 초라하게 입고 대비께 뵙기도 너무 황송스럽고, 하릴없이 낡은 관복을 꺼내 입었네.”

 

그러나 그것은 흥선의 거짓말―그의 관복은 아직 입어 보지 않은 새 것이었다. 흥선은 성하를 재촉하여 소세를 하게 하였다.

 

소세가 끝난 뒤에 앞뜰로 나가 보니, 거기엔 벌써 행차가 등대하고 있었다. 호피를 깐 사인남여가 준비되어 있고, 여덟 명의 별배가 철릭을 휘날리며 남녀를 호위하고 있고, 요강망태라 영변서랍이나 부산연죽(煙竹)이라 지갑이라 호피방석이라를 든 열 명의 구종이 벙거지에 더그레를 입고 높높이 날뀌고 있었다. 성하의 탈 가마도 준비되어 있었다. 성하는 망연히 이 모양을 바라보았다.

 

“에이, 물렀거라! 섰거라! 선 놈은 모두 앉거라!”

 

위풍 당당하게 벽제 소리 요란히 흥선의 댁 대문을 나오는 이 행차를 동리 사람들도 모두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흥선은 이런 행차에 익은 사람같이 단정히 사인남여 안에 앉아 있었다.

 

'이 일(이하전 사사 사건)이 대감께는 혹은 전화위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하전의 사건이 돌발된 때 성하가 흥선에게 향하여 던진 이 한 마디를, 흥선은 얼굴의 모든 표정을 죽여 버리고,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네.'

 

하고 넘기어 버렸지만, 그 말이 흥선에게 있어서 결코 무의미한 말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