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 네가 그 모퉁에서 필주―하니 나오니 이름이 필주로구나.'
흰 옷을 입은 인물(당시에 있어서는 양반은 옥색 기타 물들인 옷이며 평민은 흰 옷) 관속배와 상투를 맞잡고 중인 환시의 대로상에서 희롱을 하는 흥선―이 흥선과 그 날의 흥선과는 너무도 차이가 있었을 뿐더러, 그런 주착없는 일을 한 지 단 두세 시간 뒤에 흥선은 그렇듯 변한 것이었다.
그 기괴한 인물에 대한 위포와 경모의 정이 젊은 성하의 마음에 무럭무럭 일어났다. 이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면 장래 반드시 한 때 그 덕을 볼 것을 성하는 분명히 직각하였다.
“대감 계신가?”
댓돌에 선뜻 올라서는 성하를 흥선 댁 청지기가 맞았다.
“출타하셨습니다.”
“어디 가셨나?”
이런 질문은 어리석을 질문이었다. 주착 없이 돌아 다니는 흥선인지라, 청지기가 알 까닭이 없었다. 물어보았지만 성하도 스스로 고소하고 다시 내려섰다.
안사랑에서 웃음소리가 나므로 귀를 기울여 들으니, 흥선의 맏아들 재면이가 그 외삼촌 민승호와 무슨 담소를 하고 있었다.
성하는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흥선댁을 나갔다.
거기서 나선 성하는 갈 곳이 없었다.
―자, 어디로 가나?
이렇게 되면 더욱 집으로는 돌아가기가 싫었다. 성하는 어디로 가겠다는 계획이 없이 발을 옮겼다.
종로에까지 이르렀다. 공랑(公廊)이며 육주비전(六矣廛)의 흥성스러운 흥정을 곁눈으로 보면서, 성하는 지향없는 길을 남대문 쪽으로 향하였다.
“성하! 성하 아닌가?”
누가 자기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인가 하고 그냥 가다가, 서너 번째 불리고야 성하는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