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청년을 굽어 보았다. 못 알아 듣겠다는 모양이었다. 사충사의 일유사가 된 이상에는 자기도 큰 선비일 것이다. 역대의 일유사도 물론 모두 높은 선비였을 것이다. 그 모든 높은 선비들이 아직껏 예사로이 행한 일을,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성하 따위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이 아니꼽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자네는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하지, 남 듣는 데서는 아예 그런 말 다시 말게. 명유(名儒)들의 하신 일을 외람되이 말할 것이 아닐세.”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행한 일이니 즉 옳은 일이라고 단정하는 이 단순한 노인을 성하는 결코 악의(惡意)로 볼 수는 없었다.

 

뿐 아니라, 이 노인의 마음에도 결코 악의가 없는 것은 성하도 잘 아는 바였다. 양기롭고 쾌활하고 단순한 이 노인은, 자기의 행하는 일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지를 못할 따름이었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이 모두 잘난 사람들이었고, 그 잘난 사람들이 행하던 일이니 결코 나쁜 일이 아니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행하는 뿐이지, 마음에 악의가 있어서 행하는 일이 아닌 것은 성하고 짐작하였다.

 

이 단순하고도 지나친 시대의 사람을 절대로 존경하는 노인에게 대하여, 그 일이 그릇된 일임을 이해시키는 것은 지난한 일일 것이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이 잘못하였다고 지적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일뿐더러, 잘못하다가는 순한 노인의 감정난 사기가 십중 팔구일 것이다.

 

“아저씨, 그럼 그 말씀을 다시 하지 않겠습니다. 그 대신 제 부탁 하나는 들어 주십시오.”

 

“무엔가?”

 

“아까 말씀하시던 그 안모―안필주는 그대로 넘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자네가 그렇게 부탁하면 그건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자네는 그 안모와 면분이라도 있다.”

 

“안모가 아니라 흥선군과 면분이 있습니다.”

 

“흥선군? 흠! 자네는 명문 거족에 태어나서 왜 그런 주책 없는 인물과 교제를 하나?”

 

“할 수 있습니까? 이미 한 노릇을 도로 없이할 수도 없고…”

 

“그럼 내일 홍모가 오면 받았던 것은 도로 내어 줘야겠군.”

 

'투전해서 돈 땄네, 하하하' 하고 너털거리던 흥선의 모양이 획 성하의 머리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때 함께 가던 인물이 안필주였다. 그것을 생각하고 홍모의 호소를 연상할 때에, 성하는 스스로 입가에 떠오르는 고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흥선군은 홍모와 사화할 돈도 없습니다.”

 

성하가 이렇게 보태었다. 성하가 이 학사의 집에서 나온 것은 거의 황혼 때나 되어서였다.

 

“간간 오게. 자네 즐기는 평양 감홍로도 마련해 둘게, 심심하면 놀러 오게.”

 

학사는 동저고리 바람으로 대문까지 따라 나와서 성하를 보냈다. 쾌활하고 양기로운 노인과 하루 진일을 보낸 성하인지라, 당연히 그의 마음은 가벼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노인의 집을 나온 성하의 마음은 여간 무겁고 불쾌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 천진하고 단순하고 유쾌한 노인으로 하여금 의에 벗어난 일을 예사로이 하고 조금의 반성도 하지 않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