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로 제도였다. 그런 제도를 만들고 그 제도에 물들기 때문에 그렇듯 유쾌한 노인으로 그렇듯 불쾌스런 행동을 예사로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둘째로 그릇된 사대사상(事大思想)이었다. 사원을 신성시(神聖視)하고, 서원에서 하는 노릇은 불가침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 나라에 퍼지고 또 퍼진 사대 사상의 산물이었다. 군권과 관권보다도 삼고의 예의를 더욱 존중히 여기기 때문에 이런 불례(不禮)의 일이 산출된 것이었다.
세째로 위정자의 타락이었다. 자기네들도 매나가 매작과 토색과 뇌물을 가장 당연한 일로 여기고 행하는지라, 서원의 횡포를 금할 면목이 없을 것이었다.
'붉은 문의 안에서는 마부(馬夫)가 대추와 밤을 밟으며, 단청한 누각의 아래에서는 나귀가 약식(藥食)을 먹어서 가축이 인식을 먹되 금할 줄을 모르나, 이 나라는 풍년되고 따스한 겨울에도, 전하의 적자는 오히려 굶고 얼어 죽는 사람이 있소이다.'
얼마 전에 간관(諫官) 모의 상소와 같이 고관 거족들의 쓰레기 가운데도 고기 덩이가 그냥 섞여 있는 반면에는, 또한 물고기 먹으라고 강에 뿌리는 밥을 훔쳐 먹으러 위험을 무릅쓰고 물 속에 숨바꼭질하여 들어가는 가난한 백성이 부지기수이니 너무도 모순된 세상이었다.
이러한 모순된 세상을 바로잡으려면, 그것은 여간한 과단성과 힘과 패기를 가지고서는 하지 못할 것이었다. 천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하는 위대한 인물의 위대한 손이 아니면 도저히 행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누구―그런 힘센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지금 성하 자기가 머리를 수그리고 길을 걷는 동안에도, 많고 많은 재물들이 혹은 마바리로 혹은 소바리로 권문들의 집 창고로 몰려 들어갈 것이다. 권문들의 창고로 하루에 몰려 들어가는 재물이라 하는 것은, 또한 시골의 몇 집안이 몇 대를 내려오면서 근검저축을 하여 쌓아 온 노력의 결정일 것이다.
―이런 일을 생각할 때에 이 너무도 어지럽고 혼란된 상태는, 어떤 위인이 생겨날지라도 도저히 펼 수가 없을 듯이까지 보였다.
―흥선 대감! 시생이 본 바의 당신은 분명히 비범한 인물이올씨다. 다른 사람이 감히 손도 못 댈 일을 넉넉히 감당할 분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어지러운 국면을 당신은 능히 개척할 만한 능력을 가지셨습니까? 당신의 힘을 의심함이 아니라, 세태가 너무도 어렵게 됨을 근심함이로소이다. 시기를 놓치면 명의(名醫)라도 병을 고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대감! 일어서십시오. 만약 당신이 명의의 수완을 가지신 분이라면 하루 바삐 일어서십시오. 시기가 너무 늦어서 대사를 그르치기 전에 어서 일어서십시오.
저녁때라도 제 집으로 돌아들 가는 어지러운 무리의 사이에 섞여서, 성하는 머리를 푹 가슴에 묻고, 마치 술취한 사람 모양으로 고르지 못한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