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가 거의 되면서, 하루 종일 수많던 일기가 차차 이상하여 가기 시작하였다. 저녁 하늘에 한 점 거멓게 생겨난 구름 덩이가, 갑자기 퍼지기 시작하다가 순식간에 하늘의 절반을 덮었다. 원뢰(遠雷)의 소리까지 한 두 번 났다. 이 불쾌한 답청을 어서 끝내려고 기회만 보고 있던 영어가, 이 일기의 급변을 보고 즉시로 귀가를 재촉하였다.

 

“어, 날씨가 갑자기 변한다. 한 소내기 오실 모양이군! 비 오시기 전에 어서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시다.”

 

이리하여 저편 딴 데서 놀던 하인들을 불러서 일변 걷어 치우며 일변 교군의 준비를 하며 하였다. 이리하여 흥선과 갑 판서의 사이에 생겨나려던 불상사는 무사히 패스가 되려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인위로서 만들려는 불상사는 이 최후의 순간에 이르되 그만 폭발되고 말았다. 하인들이 남은 음식들을, 버릴 것은 버리고 그릇을 간수하며 하노라고 돌아갈 동안 흥선은 음식 치우는 그릇에서 한 조각의 포육을 집어서 입에 넣었다.

 

이 편에서 남녀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던 갑 판서가 걸핏 그것을 보았다. 흥선을 망신을 시키려고 벼르기만 하면서 아직껏 진정한 망신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적이 불만하던 그의 눈에 이 꼴이 띄었는지라, 그냥 둘 수가 없었다. 보는 순간 그는 그 편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하인을 불렀다.

 

“여봐라!”

 

하인이 대령하였다.

 

“깜박 잊었다. 그 남은 음식들을 모두 종이에 싸서 흥선 대감께 드려라. 내버려야 새 짐승의 살이나 할 것이나, 잘 싸서 대감께 드려라. 한동안 반찬은 되리라.”

 

그리고 흥선을 향하여 말을 계속 하였다.

 

“대감, 사양하지 마시고 가져가시오. 신발 삭이고 이런데 찾아 다니시기보다, 저것을 가져가면 한동안은 댁에서도 넉넉히 자시리다. 근처에 개 짐승이라도 보이면 주고 말겠건만, 불행히 그런 것은 보이지 않고, 내버리자니 대감이 아수해 하시겠고…”

 

포육 한 조각을 집어 씹고 던 흥선은, 획 갑 판서를 등지고 돌아서고 말았다. 그러나 그의 뒷덜미가 들먹거리는 것으로 보아서, 떠오르는 격분을 누르려고 노력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상전의 부름에 등대는 하였지만, 하인도 이 너무도 심한 영은 그대로 거행할 수도 없는지 허리만 굽히고 그냥 서 있었다. 이런 불쾌한 장면을 조정함에는 다시 영어가 들어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 판서의 영 때문에 그릇을 치우던 하인들이 손을 멈추고 있는 것을 보고 영어는,

 

“금방 비가 쏟아지려는데 왜들 꿈질거리느냐?”

 

고 호령을 하였다. 그러나 이 영어의 말에 갑 판서는 다시 매달렸다.

 

“얼른 종이에 싸서 드리지 않고 왜들 꿈질거리고만 있느냐?”

 

그는 하인들에게 이렇게 호령하였다.

 

“여보게 갑 판서, 그것 뭘 그러나? 농담은 인제 그만 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