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그 갑(甲)이 어떤 집안 어른을 모시고 봄 구경을 홍인문 밖으로 간 일이 있었다. 그 때 마침 그 근처를 배회하던 흥선에게 들킨 바가 되었다. 흥선은 얼굴에 굶주린 미소를 띄고 이 패에 섞이어 들어왔다. 갑이 모시고 갔던 어른은 이것이 너무 역하여, 그만 일어서서 저 편으로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그러매 흥선은 빈 자리에 들어앉아서 마음대로 음식을 다 버르져 놓고 갔다는 것이었다.

 

“글쎄, 그런 변이 어디 있겠나? 내가 망신을 했네 그려.”

 

갑은 이렇게 술회하였다.

 

영어는 자기의 왼편 귀 아래 맺은 호박 갓끈을 어루만지면서 그냥 미소할 따름이었다. 지금의 권문 전부가 흥선 따위는 사람으로 보지도 않고 수모가 막심하였지만, 영어는 흥선을 수모로 하면서도 일종의 동정심도 또한 가지고 있었다. 흥선의 무염치를 수모는 하면서도, 또한 남들과 같이 내놓고 멸시는 못하는 것이었다.

 

“석파는 그저 그런 사람으로 여기어 두어야 하네. 어느 어른을 모시고 갔었는지는 모르지만, 석파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신 그 어른이 실수시지. 그래 자네 음식상 받았을 때 주린 짐승이나 새 버러지가 온다고 자리를 피하겠나? 그 어른의 실술세.”

 

“자네는 흥선군을 늘 두둔하데 그려?”

 

“불쌍하지 않나?”

 

“십상 팔구는 좀 있다가 여기로 올걸. 오면 내 한 번 망신을 시켜 주지.”

 

“그건 마음대로 하게.”

 

“자네 간섭했다는 안 되네.”

 

“내가 왜 간섭을 하겠나? 내가 석파의 조카인가 삼촌인가? 간섭할 까닭이 있나?”

 

갑은 기생을 돌아보았다.

 

“너희도 잠자코 보기만 해야 된다.”

 

그 기생들 틈에는 흥선과 가까이 지내는 계월이도 있었다. 계월이는 억지의 미소로써 대답하였다.

 

“대감의 코는 사냥개 이상이야. 허허허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