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상 앞에 마주 앉은 것이 미안스러운지 이런 말을 하였다. 흥선의 말마다 독한 대답으로 응하던 갑은 여기도 또 같이 응하였다.

 

“혼자 잡수시오. 대감 혼자서도 부족해 맞을 걸…”

 

“이걸 나 혼자야 어떻게 다 먹겠소.”

 

“뿐더러 대감 잡숫던 걸 누가 먹겠소?”

 

어성(語聲)은 예사롭지만 이 지독한 독설에 흥선은 들려던 젓가락을 멈추었다. 한 순간 눈과 귀가 움찔하였다. 그것을 폭발시킬지 삭여 버릴지 판단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이 가운데를 영어가 뚫고 들어왔다.

 

“농을 한바탕 했더니 목이 마르군. 갑 판서 을 판서는 많이 잡수셨으니깐 우리 부자끼리 몇 잔씩 더 합시다.”

 

“참 영어는 효자야! 우리 가문의 행복일걸.”

 

갑에게 대하여 폭발하려던 노염을 감추어 버리면서 흥선은 영어에게 미소를 던졌다. 이 미소―흥선의 마음이 불쾌하든가 어색하든가 싱겁든가 할 때에는 반드시 나타나는 이 미소는, 흥선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호신장(護身裝)인 모양이었다.

 

“호부(呼父)한 뒤에 인제 말을 고치면 대감 자당을 욕하는 게 된다오. 그런 불효의 짓은 하지 마시오.”

 

“오자―오손―에이 아들로 승격을 시켜주어라.”

 

이리하여 영어는 흥선과 상에 마주 앉았다. 갑 판서는 그 뒤에도 기회 생길 때마다 흥선에게 망신을 주려고 독한 입을 놀리고 하였다.

 

그러나 웬만한 망신은 흥선의 망신으로 여기지 않았다. 신경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이 이상에는 반드시 찔릴 만한 독설을 퍼부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흥선은 이것을 알아들었는지 혹은 못 알아들었는지 거저 넘기고 하였다. 이러한 흥선으로서도 거저 넘기지 못할 최극단의 독설이 나올 때는 영어가 어름어름 넘겨 버려서 그 독설 이 직접 홍선에게 및지 않도록 하였다. 하루를 유쾌히 놀려던 이 답청은 흥선 때문에 이상한 기분으로 종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