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흥선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 그것은 왕자(王者)나 고승(高僧)의 얼굴이고야 비로소 볼 수 있는 온화하고도 엄격하고 위엄성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가 흥선을 안 이래 삼십 년―아니 영어가 세상에 난 이래 처음 보는 위엄 있는 얼굴이었다. 영어는 그 얼굴에 위압되어 머리를 딴 데 돌리고 말았다. 갑 판서는 흥선의 호령에 얼굴을 흥선에게로 돌렸다. 돌렸던 얼굴을 황급히 다른 데로 구을리며 남녀로 향하여 발을 뗀 것은, 그도 이 위엄에 압도된 때문인 모양이었다.

 

영어, 갑 판서, 을 판서의 일행은 벽제 소리 요란히 구종별배를 달고 이 필운대를 떠났다. 계월이 외의 다른 기생들도 떠났다. 뒷설겆이를 하고 하인들도 돌아갔다. 그 뒤에 남은 것은 흥선과 계월과 좀 아랫쪽에 계월이의 교군군뿐이었다.

 

흥선은 묵연히 서 있었다. 그 곁에 계월이도 쫑그리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하늘은 새까맣게되었다. 금시로 소나기가 쏟아질듯 하였다. 와르르 와르르 천둥소리가 연하여 났다. 하늘을 날던 새 새끼들도 이 무서운 날씨를 피하여 각기 제깃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이런 날씨의 변화도 모르는 듯이 흥선과 계월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댁으로 모시랍쇼?”

 

교군군이 보다 못하여 채근할 때에도 계월이는 모르는 듯이 가만히 있었다. 드디어 계월이가 먼저 머리를 들었다.

 

“대감!”

 

흥선은 대답지 않았다. 못 들은 듯이 그냥 있었다.

 

“대감!”

 

“…”

 

“대감!”

 

“어, 날씨 고약하군! 비가 곳 올 모양이군. 계월이 너 왜 어서 가지 않느냐?”

 

“대감!”

 

“자, 어서 가거라. 여봐라, 교군군. 어서 모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