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도 마주 계월을 굽어 보았다. 흥선의 눈에도 적적한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적적한 표정에 어울리는 적적한 말도 나올 듯하였다. 그러나 즉시로 그것을 도로 삼켜 버렸다.

 

“뭐이 분하단 말이냐? 계집들이란 별별 일을 다 분하다더라. 양반이 양반 자세하는데, 나 같은 상놈이야 수모받았지 할 수 있나?”

 

상놈? 너무도 심한 자가비하(自家卑下)였다. 수년 전 이(사도세자의 증손되는) 흥선의 집안과 (사도세자의 신하되는) 홍국영의 후손과 혼인을 맺게 되었을 때, 홍씨 측에서 도리어 혼인을 꺼릴 만큼 영락된 흥선의 집안인지라, 이 한 마디는 과연 눈물겨운 자가비하였다.

 

“네, 상놈 대감! 이 양반 기생이 드리는 약주, 마음에 안 드시겠지만 한 잔 받아 주세요.”

 

“자, 기부 노릇을 할까? 네가 잘 벌지를 못하면 나는 내 재간껏 또 서투른 난촛장이나 그려서 팔지. 살 만한 고객이나 좀 지금부터 물색해 두어라.”

 

흥선은 잔을 받아서 마셨다.

 

“음! 여편네가 벌어다 주는 걸 먹으려니까 잘 목구멍을 넘지 않는다.”

 

“안주도 드세요.”

 

“들랄 것 없이 먹여 주려무나.”

 

흥선은 입을 쩍 벌렸다. 계월이가 젓가락으로 집어 주는 안주를, 혀를 기다랗게 뽑아서 받아 먹는 흥선―계월이는 마땅치 않은 듯한 표정으로 흥선에게 안주를 집어 주었다.

 

“어, 맛나군! 기부 노릇도 할 만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