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부의 남쪽을 굽이굽이 흐르는 한강 하류변(漢江下流邊)―
강 이쪽이며 건너쪽이며 할 것 없이, 서너 사람 대여섯 사람씩 몰려 서서, 무엇을 기다리는 듯이 강 상류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안 오지?”
“벌써 오겠나?”
근처의 어부, 농군, 촌부 할 것 없이, 남녀 노소가 한 떼 한 떼씩 몰려 서서 공론들을 하고 있다.
“백 섬이라던가?”
“아니 오십 섬이라나보데.”
“오십 섬은? 스무 섬이야.”
“스무 섬만 치더라도 우리 집안이 이 년은 남아 먹을 걸세 그려! 돈도 흔한 사람들도 있지―”
“흔하지 않겠나? 매일 시골 생원들이 갖다가 바치는 것만 해두 수천 냥씩 된다네.”
“쉬! 허투루 못할 소릴세.”
말하던 사람, 금지당한 사람, 모두가 경계하는 듯이 뒤를 돌아보았다. 봄날 맑은 한강 물은 이런 상놈들의 평판을 담아 가지고 넘실넘실 아래로 흘러 내려간다.
나주 합하 양씨(羅州閤下梁氏)의 시반일(施飯日)이었다.
옛날 명종조(明宗朝)에, 대신 윤 원형(尹元衡)에게 난정(蘭貞)이라 하는 첩이 있었다. 간사하고 악착한 계집으로서, 뇌물을 즐기고 음사를 즐기는 인물이었다. 그 난정이 일 년에도 두세 번씩, 밥을 여러 섬씩 지어서 실어 가지고 두모포(豆毛浦) 등지에 가서 강에 밥을 던졌다. 물고기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뜻이었다.
명종 시대의 윤 원형의 첩과 같은 길을 걷는 하옥 김좌근의 첩 양씨도, 밥을 이십 섬어치를 지어 가지고는 오늘 한강에 던져서 고기들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떠나는 것이었다.
스무 섬이면 자기네 집안에서는 이 년을 먹고도 남겠다고 불평을 말하던 젊은이가, 이번에는 무슨 중대한 보고나 하는 듯이 함께 이야기하던(농군인 듯한) 친구에게 입을 가까이 대고 소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