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계월아!”
“네?”
“너는 불러라, 나는 뜯으마.”
계월이도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무얼 부르리까?”
“탁문군의 상부련(想夫憐)―”
“네, 그럼 부르리다. 뜯어 주세요.”
목소리를 가다듬은 그의 입에서는 애음 끊어지는 듯한 '상부련' 한 곡조가 울려 나왔다.
흥선은 계월이의 노래를 따라서 가야금을 뜯었다. 혹은 성낸 물결과 같이 우렁차게―혹은 수풀의 벌레 소리와 같이 끊어지는 듯―가야금에 얼리어서 높고 낮은 음파는 부드러운 밤 공기를 헤치고 멀리까지 울리어 나갔다. 길을 가던 사람이며 밤 잠을 들지 못하여 혼자서 전전하던 젊은 과부들은, 이 너무도 절실한 음파에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귀를 기울였으리라. 한 곡조 끝이 났다. 그것이 끝이 나기가 무섭게 흥선은 계월이에게,
“또 불러라! 또 뜯으마.”
하였다.
“이번은 무엇을 부르리까?”
“네 장기대로, 네 마음대로 아무것이나―”
계월이는 다시 불렀다. 흥선은 다시 뜯었다.
그뇌스러운 봄밤을 계월이는 부르고 흥선은 뜯어서 새웠다. 한 마디가 끝나면 다시 새로운 것―그것이 끝나면 또 다른 것―이리하여 동리의 젊은 과부로 하여금 한 잠도 못 자게 흥선과 계월이는 꼬박 밤을 세웠다.
자기네들의 온 정열을 부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불평을 담은 노래, 자기네들의 온 희망을 실은 노래―이 절절한 노래는 동리의 젊은 과부뿐 아니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뉘 집에서 누가 불렀으며 누가 뜯었는지, 동리로 물으러 다닐 만큼 진실미를 띤 것이었다. 마음에 적지 않은 불평을 가지고 그 불평을 하소연할 곳이 없는 두 사람은 하루의 고뇌스러운 봄밤을 이리하여 너는 부르고 나는 뜯어서 세웠다.
“대감!”
“왜?”
“대감께 꽃 필 날이 언제 이르리까?”
“모른다. 고요히 기다려 볼 뿐이로다. 기다릴 줄을 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라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느니라.”
엄숙한 구조로 이렇게 말하는 흥선을 계월이는 고뇌와 환희로 찬 마음으로 우러러보고 하였다. 거리의 술망나니, 주착 없는 치인의 일컬음을 듣는 흥선의 그런 양자는 씻은 듯이 없어지고, 당당한 왕실 공자다운 고아(高雅)하고도 경건할 이 밤의 모양에, 계월이는 자기의 눈이 결코 사람을 그릇 보지 않았음을 기뻐하였다.
동녘 하늘에 새벽 놀이 비치고, 참새들이 추녀 끝에 와서 노래를 할 때에야, 흥선과 계월이는 피곤한 몸을 금침 속으로―
봄날 새벽에 꾸는 계월이의 꿈은 매우 즐거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