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여관의 말이 아니라 내시의 말로 이미 죽었다 하는 이상에는 죽은 것이 분명하다. 무론 죽었을 것이다. 사약을 한 이상에는 죽지 않았다면 도리어 그것이 기적일 것이다.

 

“뵙고 아뢸 사연이 있더니, 몸도 좀 편하지 않고 그래서 그만두겠다.”

 

대비는 내어던져 버렸다.

 

그러나 내관이 절하고 나가려 할 때에 대비는 다시 말을 걸었다.

 

“상감 지금 동온돌(임금의 침실)에 곕시냐?”

 

“네…”

 

“아침 수라(점심)는 진어하셨느냐?”

 

“초조반만 진어하셨습니다.”

 

“누구 입시한 대신이 있느냐?”

 

“영은부원군(왕비의 친정 아버지)께서 입시하왔사옵니다.”

 

여기서 대비는 결심하였다. 김문의 수령의 한 사람이 또 무얼 하러 들어왔나? 무슨 음모인지는 모르나 좌우간 대비 몸소 상감께 나아가서 부원군으로 하여금 물러가게 하리라. 이리하여 조 대비는 일단 중지하기로 작정하였던 일을 다시 하기로 하였다.

 

“중희당서 뵙고 은밀히 아뢸 긴한 일이니, 대신은 물러가고 잠깐 중희당으로 듭시라고 나가서 여쭈어라.”

 

“황공하옵니다.”

 

절하고 나가는 내시를 보면서 대비는 최씨에게 명하여 의대를 가져오라 하였다.

 

“대왕대비마마께옵서 임어하오십니다.”

 

왕이 중희당에서 기다릴 때에 대비의 임어―

 

강화의 한 초동으로서 그 이십 년 전쟁을 보낸 상감은 전생의 초라하였음을 감추기 위하여 가장 편복(便服)일 때도 익선관(翼蟬冠)에 강사포 이하를 작용하는 일이 없었다. 조금만 큰 일에도 반드시 면류관이나 통천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었다. 이 때도 상감은 익선관에 곤룡포를 착용하고 있었다.

 

상감은 대비의 거동에 황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절하고 아랫간의 자리를 내었다.

 

대비는 가볍게 허리를 굽히며 상감이 비낀 자리에 내려가 앉았다.

 

“상감마마!”

 

내관들까지 모두 물리친 뒤에 이렇게 말하는 대비의 말투에는 다분의 위엄이 있었다.

 

“아까 듣자오매 도정 이하전에게 사약하라시는 처분이 계셨다니 사실이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