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결에 나온 말이었다. 감정의 속에서 저절로 뛰쳐 나온 '어머니'의 말이었다.

 

오냐! 나 여기 있다. 너의 어머니가 여기 있다. 지금의 너는 이 삼천리 강토의 임금이 아니요, 오직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로다―조 대비는 손을 들어서 아드님의 이마 위에 얹었다.

 

십 오 년 만에 처음 듣는 '오냐'에 대하여 상감도 감격된 모양이었다. 잠시 어머님의 얼굴을 마주 쳐다보다가 기쁜 듯이 미소하였다. 굽어 보는 눈과 쳐다보는 눈―그것은 임금과 대비의 눈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아들의 눈이었다. 그 사이 십 오 년 간을 차디찬 의식적 생활에 싸여서, 서로 죽이고 죽었던 모자로서의 정애의 눈이었다.

 

“어머님! 저것을 조금 저 편으로―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 놓아 주서요.”

 

“무얼?”

 

조 대비는 상감의 가리키는 편으로 눈을 돌려 보았다. 거기는 이 나라의 최고 존엄(尊嚴)을 자랑하는 어보(御寶─옥새)가 찬연히 놓여 있었다.

 

그것이었다. 그것이 사이에 막히기 때문에, 십 오 년 간을 어머님은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고, 아드님은 어머님을 어머님이라 부르지 못한 것이었다. 바야흐로 승하하려 함에 임하여, 지금은 국왕과 대비의 사이가 아니요, 단지 한 아들과 한 어머니의 사이로, 최후의 순간의 평화를 보지하려매 상감께는 어보가 장애가 된 것이었다.

 

대비는 조금 그것을 밀어 놓았다. 상감에게 보이지 않을 만큼―그러는 사이에 대비의 눈에서는 하염없는 눈물이 나왔다.

 

“어머님! 소자는―소―소자는…”

 

숨이 찬 모양이었다.

 

“그간 불효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서요? 아니 무슨 말을 하느냐? 얘야!”

 

십 오 년 만에 서로 부르고 불리는 이 모자의 모양은 곁에서 부채질하고 있는 여관(女官)의 눈에서까지 눈물을 자아내었다.

 

“답답하옵니다. 가슴을 쓸어 주서요.”

 

“오냐! 어서 나아라. 천만 백성이 기다린다.”

 

모자는 십 오 년 만에 공(公)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서 모자로서의 정회를 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