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대비며 김씨 일문의 의견대로 강화 도령이 헌종 승하한 뒤에 신왕으로 영립되었다. 조 대비는 이 마음에 맞지 않는 신왕을 묵묵히 맞아 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월은 끊임없이 흘렀다. 십수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러는 사이에 대왕대비 김씨도 정사년(丁巳年) 팔월에 드디어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로부터 이 년 후에 조씨는 대왕대비가 되었다.
김 대비 없는 지금의 조 대비는 이 종실의 최고권위자였다. 종실의 동향에 있어서는 조 대비께의 자문이 없이는 행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은인(隱忍) 십 년, 이제 온갖 굴레를 벗은 조 대비는 비로소 그 세력을 펴려고 책동치 않을 수가 없었다. 권력은 가졌지만 아직 세력은 못 가진 조대비는, 세력 방면으로의 활동을 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때문 김씨 일문의 세력이 너무도 강대하였다. 대왕대비 김씨는 하세하였다 하되, 그의 동생 김좌근이며, 현 왕비 김씨의 아버지 김문근이며, 숙부 김수근이며, 오빠 김병필, 그 밖에 김 무슨 근 무슨 근 하는 근자 항렬이며, 병 무엇 병 무엇의 병자 항렬의 세력은 너무도 커서, 조 대비의 권력으로도 당할 염도 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김문에서는 큰 근심의 재료요, 조대비께는 희망점 되는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신왕도 후사가 없는 점이었다.
신왕이 왕자를 탄생하면 그것은 별문제였다. 그러나 만약 종친 가운데서 동궁을 간택한다 하면, 조 대비의 승낙이 없이는 못 하는 일이다. 여기 김문의 약점이 있고 조 대비의 장점이 있다.
김문에서는 왕자 탄생을 축원하고 또 축원하였다. 그러나 김씨의 운이 진한 탓이든지, 몇 번 왕자가 탄생은 되었지만 모두 조서하였다. 김문에서 이를 걱정하여 김문의 뜻에 맞는 종친 공자로서 동궁을 책립하자는 의논도 몇 번 났었지만, 이 문제에는 권한을 잡은 조 대비가 거부하였다.
십수 년 전 조 대비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 말년과 흡사한 이즈음이었다. 그 때의 대왕대비 김씨에게 눌려서 마음에 맞는 '인손'이를 맞지 못하고, 마음에 없는 '강화 도령'을 묵묵히 맞아들인 조 대비는, 지금 '강화 도령'의 대에 있어서는 종실 봉사자를 지정할 절대 권리자였다. 그 때 김씨 일문에게 받은 쓰디쓴 잔은 지금 또 한 조 대비에게서 김씨 일문에게로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왕자가 없고 몸이 약한 현 상감의 앞에서 김씨 일문은 이 난문제를 해결하려고 갈팡질팡할 동안 조 대비는 정관하고 있었다.
“인손이의 것은 인손이에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