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하여 대비는 몹시 나무려운 눈자위를 용안에 부은 채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벌써 초로(初老)―아니, 중로에 든 대비는, 밤에 쉽게 잠을 들지를 못하였다. 더구나 그 날은 이하전의 사건 때문에 마음이 매우 불쾌하여 잠을 들 수가 없었다.
밤에 자리에 들어서 불 켠 것을 싫어하는 대비는, 촛불을 멀리 대청에 내다 놓게 하여, 겨우 방 안의 어두운 기나 없게 하고 촌의(內衣)뿐으로 자리에 들어서, 두 사람의 시녀를 불러서 다리를 두드리게 하고 있었다. 너무 아프게 두드린다, 너무 가볍게 두드린다, 말이 많았다. 김씨 일문에 대한 노염을 시녀에게 부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가운데서 김씨 일문의 외람된 행동에 대한 대책을 대비는 강구하고 있었다. 한 따님 밖에는 소생이 없는 상감인지라, 반드시 대비 당신의 권한 아래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지 않을 수가 없는 지금의 현상에 대하여, 대비는 종친 중의 많은 공자들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이하전이 이미 죽은 지금에 있어서는 다른 새로운 승통자를 내정하지 않을 수가 없는지라, 새로운 승통자의 인선(人選)에 대비는 골몰하였다.
적어도 새로운 승통자는 대비 당신과 가까운 사람, 대비 당신의 심복인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김씨 일문에서 부수한다든가 동화할 인물이면 안 될 것이다. 대비 당신과 짜 가지고 장래 김씨 일문을 누를 만한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김씨 일문에게 대한 대비의 노염을 장래 충분히 풀기 위하여는, '그 사람'도 김씨 일문에서 원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야 될 것이다.
그러면 누구?
김문을 미워하는 사람―그리고 대비 당신과 짤 수 있는 사람―또한 그 위에 장래에도 김문과 타협이 안 되고 끝까지 김문과 싸울 사람―이러한 사람이 종친 가운데 있나?
머리로서 종친의 몇 사람을 점검하여 내려가던 대비는 흥선에 이르러서 딱 멈추었다. 흥선군은 대비 당신의 육촌 시동생―말하자면 멀지 않은 종친이다. 흥선은 김문에게 멸시를 받는 인물인지라, 또한 그만큼 김문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사람이다. 흥선은 비록 몸은 종친이라 하나, 투전과 술로 소일을 하는 허튼방이라 지벌을 자랑하는 명문 거족인 김씨 일문을 흥선의 절제를 좀체 받지 않을 터이며, 장래에도 김씨 일문과 흥선은 웬만해서는 타협이 되지 않을 것이다.
흥선은 대비 당신의 조카 조성하와 매우 가까이 지내는 모양이매, 장래 흥선이 권세를 잡는 날이 이른다 하면, 대비 당신을 괄시하지 못할지며 조성하를 괄시하지 못하겠으니, 오늘날의 김씨 일문의 세도는 그 때는 조시 일문으로 당연히 돌아올 것이다. 종친 가운데서 이하전에 대신할 사람을 골라 내자면 당연히 손가락은 흥선군 이하응의 위에 멎어야 할 것이다. 만약 장래 흥선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오늘날 그렇듯 흥선을 멸시하던 김가들의 꼴도 또한 보기에 통쾌할 것이다.
'종실의 어른'이라는 당신의 권병으로서, 흥선의 아들을 끌어 올려 김씨 일문의 위에 내려씌우면 과연 통쾌한 일이다. 지금 한 없이 뽐내던 김문이 주정방이 흥선의 앞에 그 허리를 굽히는 꼴은 근래에 다시 없는 통쾌한 일일 것이다.
이리하여 김씨 일문에 대한 노염과 증오 때문에, 거리의 주정방이 흥선은 조 대비의 점검(點檢)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너무도 그 인격이 종친답지 못한 점을 조 대비는 김문 복수에 이용하고자 한 것이었다.
수일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