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절사연(諸節事緣) 압고저 대령하왔습니다.”

 

왕에게서 대비에게 대한 아침 문안―아침 문안이라 하나, 대궐 안의 아침 문안은 거의 오정에 가까운 때였다. 발 밖에서 곡배(曲拜)를 드리는 승전빛에게 대비는 가볍게 대답하였다. 대비를 뵙기를 몹시 거북히 여기는 왕은, 열흘에 엿새 평균 승전빛으로 하여금 대리로 문안을 드리게 하였다. 문안을 드리고 내관이 바야흐로 물러 나가려 할 때에 대비가 내관을 불렀다.

 

“승후방(承候房)에 나가서 승후관 조성하가 들어왔나 알아보아라. 그리고 들어왔거든 내가 부른다고 전하여라.”

 

“네!”

 

뒷걸음을 쳐서 물러가는 승전빛을 대비는 조소(嘲笑)에 가까운 미소를 띈 눈으로 바라보았다.

 

일찍이 홀몸이 된 이래 삼십 년 간을 온갖 불만과 불평을 마음 속으로만 삭여 버리고 지낼 동안, 그의 속에 생장한 성격은 공상과 복수심이었다. 조성하를 부른 것은 성하에게서 흥선에 대한 사연을 좀더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너 이즈음도 흥선군을 만나느냐?”

 

성하가 들어와서 문안을 드리고 바로 앉기가 무섭게 조 대비가 물은 말이 이것이었다. 승후방에 있다가 대비의 부름으로 갑자기 들어온 성하는, 대비의 첫 질문이 뜻도 않았던 바이므로 눈을 둥그렇게 하고 쳐다보았다.

 

“잠깐 만나기는 하옵니다마는…”

 

왜 그 말씀을 새삼스럽게 물으시냐는 뜻이었다. 대비의 질문은 한 걸음 뛰었다.

 

“흥선군에게 아들이 몇이나 있느냐?”

 

“직자가 두 분이 있는가 하옵니다.”

 

“작은도령의 연치는 어떻게 되느냐?”

 

“금년 열 살이올씨다.”

 

“열 살이라…”

 

대비는 잠시 생각하였다.

 

“아직 총각이지?”

 

“김병문의 딸과 정혼은 했단 말이 있읍지만 아직 성례는 안 했습니다.”

 

“김…”

 

여기에도 김문이 있다. 대비는 한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