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비가 자기를 부른 것은 두 가지의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하나는 이하전 역모 사건이라는 기괴한 사건의 윤곽을 알아보려는 것이요, 또 하나는 흥선에게 적당한 도령이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사건이 합하여 낳은 한 가지의 결론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즉 흥선댁 도령에게 대하여 대비는 호기심을 일으킨 것이었다.

 

성하는 대비의 영에 의지하여 자기가 아는껏 소위 이하전 역모 사건의 전말을 대비에게 아뢰었다. 아뢸 동안 성하의 마음은 이상히도 긴장되었다. 만약 지금 자기의 추측으로서 옳다 할진대, 여기에는 커다란 사건이 하나 빚어져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지금 빚어지는 이 '떡'이 장래 익을 때에는 어떤 모양을 하고 나타날지 그것은 예측도 할 길이 없다. 그러나 온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사건 하나가 지금 이 평범한 자리에서 빚어져 나아가는 것을 성하는 직각하였다.

 

이하전에게 대한 대비의 촉망을 짐작하고, 지금 그 하전을 잃은 대비의 분노를 생각할 때에, 그 자리에서 나오는 한 사람의 왕족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히 간주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성하는 직각하였다.

 

성하는 눈을 조금 들어서 대비를 쳐다보았다. 무엇이 몹시 불안한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성하의 말을 듣고 있는 이 노파―이 노파의 얼굴이 이 때같이 무섭고 크게 보인 일이 성하에게 없었다.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기 시작하고, 머리에도 간간 흰털이 보이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한 개의 노파에 지나지 못하되, 이 노파의 마음 하나로서 장래 삼천리 강토를 지배할 지존을 작정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노파는 입으로는 그 때 말도 하지 않으나, 이하전 사건에 대한 분노 때문에 즉시로 다른 새로운 이하전을 마음으로 작정하였다가 유사시에 덜컥 내놓아서, 지금 권문인 김씨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려는 복안인 듯싶다.

 

그리고 그런 필요상 흥선 댁 도령의 일을 캐어 묻는다하면, 지금 아무것도 모르고 자기 댁에서 연을 올리는지 혹은 돈치기라도 하고 있는지 하는 그 소년은, 장래 놀라운 자리에 올라갈 소년이다.

 

“그래! 그래?”

 

감탄사인지 질문인지 분간하기 힘든 이런 말을 간간 끼우면서 성하의 말을 듣고 있는 이 노파의 마음은 지금 어떻게 움직이나? 알 길 없는 이 일을 짐작이라도 하여 보려고 성하는 슬금슬금 대비의 얼굴을 쳐다보고 하였다.

 

이하전의 사건에 대하여 성하가 자기의 아는 것을 다 말한 뒤에도, 대비는 특별히 당신의 의견이라든가 감상이라든가를 말하지 않았다. 입맛이 쓴 듯이 몇 번 혀를 챌 뿐이었다. 그런 뒤에 남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백두산이 무너지나―동해수 메어지나”

 

중얼거렸다. 그런 뒤에 성하에게 향하여,

 

“하전이란 놈은 과시 고약한 놈이로군. 제가 역모를 하다니! 당랑(螳螂)이 수레를 버티는 셈이지. 죽어 싸니라, 죽어 싸!”

 

하고는 억함을 참을 수가 없는 듯이 양 어깨를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