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이런 때에 무사하다고 장담을 할 보장을 얻기 위하여, 혀를 깨물고 피눈물을 쏟은 적이 몇십 몇백 번이나 되나? 상갓집 개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래도 얼굴에 개가죽을 씌우고 그냥 기신기신 권문들을 찾아 다닌 것은, 이런 때의 방비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하옇든 이 일을 어쩝니까? 그럼 도정 잭은 멸족이겠구료?”
“아직 모르겠소.”
“아이구! 가슴이 서늘해.”
“요 다음은…”
흥선은 여기서 기다랗게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뉘 차롈까?”
“맙시사, 하느님! 너무도 심하시외다.”
생후 사십 년―부인이 흥선을 안 지 이십 유여 년, 오늘같이 낭패한 흥선을 부인은 일찍이 본 일이 없었다. 겁에 뛴 커다란 눈을 좌우로 두르며 앉지도 못하고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이러한 창망한 경우에서 흥선은 문득 자기의 둘째아들을 생각하였다.
“이 애, 작은애는 어디 갔소?”
“저 방에서 글 읽나 보이다.”
흥선은 소리를 높여서 소년을 불렀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름에 응하여 온 소년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무슨 글이냐?”
“'좌씨전(左氏傳'이올씨다.”
“내버려라! 나가 놀아라! 건넛집 행랑애들과 돈치나 해라. 글은―글은…”
아아 무엇보다도 목숨을 보전해야 할 것이다.
글? 좌씨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을 사랑하는 아들에게 시키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떨립니다.”
“에익! 고약한! 천도도 너무도…”
흥선은 말을 끊었다. 너무도 억하기 때문에 목이 메려 하였다. 그것을 부인에게 속이기 위하여 흥선은 두어 번 헛기침을 하였다. 그런 뒤에 이 너무도 기막히는 일에 가슴이 답답한 듯이 주먹을 들어서 자기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부인은 창백한 얼굴로 흥선을 바라볼 따름이었다. 소위 공모자들은 서소문 밖에서 참하였다. 이하전에게는 사약을 하였다. 이러한 '이하전 사건'의 후보(後報)를 가지고 흥선을 찾은 사람은 조 대비의 조카 조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