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물망에 올랐던 사람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십 이 년 전 헌종 승하했을 때에 왕의 물망에 올랐던 도정은 그 때 왕이 못 된 이상에는 마땅히 죽었어야 할 것이었다. 오늘날까지 산 것은 횡수였다. 부인의 통곡에 대하여 하전은 이렇게 고요히 위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망극한 일에 부인이 정신을 못 차리고 그냥 통곡할 때에 하전은 몸을 피하여 일어섰다.

  

“뒷일은 맡으시오. 피할 수 없는 길이외다. 금부도사가 오기까지 나는 산 송장이오, 유언 유훈은 정침 문갑 서랍에 들어 있소.”

  

하고는 듯 몸을 빼어서 사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고요히 아랫목에 앉았다.

  

밖에서는 나비―혹은 풍뎅이인지가 한 마리 방 안으로 날아 들어 오려는 문창을 뚱뚱 두드리고 있었다. 때때로 날아서 저편까지 갔다가는 다시 문창으로 돌아와서 창을 두드리고 하였다.

  

―무얼 하러 이 방에 들어오려느냐?―

  

하전은 고요한 마음으로 나비―풍뎅이인지―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죽음을 앞에 한 사람의 낭패는 보이지 않았다.

  

이튿날―

  

'죽음'이라 하는 상서롭지 못한 사명을 띠고 금부도사의 일행이 도정 댁에 이르렀을 때는 하전은 금부도사의 일행을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때였다.

  

목숨을 뺏을 독약이 한시 바삐 온 몸에 퍼지게 하기 위하여 방에는 불을 처때어서, 웃목까지 발을 들여 놓기가 힘들도록 뜨거웠다. 아랫목 두터이 깐 보료는, 속에서 타는 내까지 났다. 그 위에 이하전은 도정의 정복을 갖추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양을 달일 숯불도 마루에 준비되어 있었다.

  

청지기의 인도로 죽음의 사자의 일행이 들어오는 것도 하전은 눈 까딱하지 않고 고요히 맞았다.

  

문 밖에서 부글부글 약 끓는 소리를 들으면서, 바야흐로 죽음의 길을 떠나려는 하전과, 그 죽음을 감시할 금부도사와, 죽음을 판단할 의관은 말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방이 너무도 덥기 때문에 그들의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만 뚝뚝 떨어졌다.

  

드디어 약은 다 졸았다. 다 존 약을 앞에 받아 놓은 뒤에야 하전은 비로소 금부도사에게 한 마디 물어 보았다.

  

“내 친구들은 다 어떻게 되었소?”

  

금부도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