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한 사람 배에서 내리는 사람마다 오라로 결박을 지었다. 다만 하전은 종친의 한 사람이라는 명색 때문에 결박만은 면하였다.
“무슨 일이냐?”
“어명이올씨다. 우리는 모릅니다.”
“누구를 잡으라는 명이냐?”
“도정 이하전과 및 같이 의논하는 역적을 모두 잡으라는 명이올씨다.”
하전은 결박진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죄명은 역모(逆謀)였다. 역모에 대한 벌은 극형이었다. 무슨 까닭으로 죄 없는 자기가 이런 죄명을 쓰게 되었는지는 너무도 분명한 일이었다. 자기와 함께 배를 타고 봄날의 하루를 즐기던 밖에는 아무 죄도 없는 친구들도, 당연히 '하전과 반역을 도모하였다'는 죄를 쓸 것이었다.
안 하였노라고 변명을 하여도 쓸데 없는 일이었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이상에는 고요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결박진 친구들을 돌아보다가 하전은 빙그레 미소하였다. 가슴에 엉긴 피를 속이는 미소였다.
“사태는 글렀네. 내세에서나 다시 만나세. 나하고 사귄 죄일세. 그 사죄도 내 내세에서 함세.”'친구들에게는 이렇게 작별 인사를 하였다. 그러나 나장에게,
“나는 집으로 간다. 어명이면 승지를 보내라.”
하고 그 곳서 발을 떼었다. 거기서 나장에게 잡힌 친구들을 작별하고 지나가는 가마를 하나 잡아 타고 돌아오는 동안, 하전의 마음은 자기로도 어찌하여야 할지 분간하지 못하였다. 죽음이라는 커다란 그림자가 그의 앞에서 어릿거릴 따름이었다. 피할 수 없는 그 그림자―그것은 단지 자기가 왕족의 한 사람이며 왕족 가운데 좀 두드러진 인물로 생긴 때문에 받지 않을 수 없는 쓰디쓴 잔이었다. 왕족으로 태어났거든 바보가 되거나, 지금의 권신들한테 머리를 땅에 대고 아첨을 하거나 하여야 할 것이어늘, 그렇지 못한 죄밖에는 아무 죄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