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의 초동으로 보위에 오른 철종인지라, 오랜 수양으로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자기 비판안'과 '자제력(自制力)'을 못 가졌었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아리따운 궁녀며 향그러운 술이며 맛있는 음식인지라, 당신의 건강이 그 때문에 쇠약해 가고 두뇌는 몽롱하여 가는 것을 짐작은 하지만 나날이 더욱 침혹하였다. 당신의 위에 만약 의외의 행운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 일생을 강화도에서 보냈더면, 여생의 한편 모퉁이에는 이런 환락경이 있다는 것도 짐작도 못 하고, 흙과 먼지에 싸인 일생을 보낼 뻔하였는지라, 느지막이 만난 이 행운을 즐기고 또 즐겼다.

  

아리따운 후궁의 부어 올리는 푸른 술에 약간 취하여 과거를 회상할 때에는, 철종께는 지나간 날의 초동 생활이 마치 꿈과 같았다. 만약 과거의 그 때가 꿈이 아닐 것 같으면 현재가 필시 꿈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생활의 사이에는 사람의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너무도 넓고 큰 차이가 있었다.

  

이렇게 옛 말에나 나오는 생활과 같은 안일한 생활의 십여 년 간, 이전 강화에서 단련된 총각의 건강은 없어지고, 지금은 약하디 약한 몸이 되었다. 용상에서 일어나다가 그냥 혼도하여 모셨던 신하들로 하여금 망지소조하게 한 일도 여러 번이었다. 신하들과 무슨 의논을 하다가 그냥 정신을 잃은 일도 간간 있었다.

  

노염, 비애, 환희 - 경우를 가리지 않고 때를 가리지 않고 아무 예고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는 이런 감정들 때문에 돌발적으로 행한 기행(奇行)―아니 괴변도 적지 않았다. 혹은 어린애같이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도 있었다.

  

대궐에서는 이러는 사이에도 여러 번 아기의 탄생이 있었다. 그러나 탄생한 아기는 모두 수가 짧았다.

  

나날이 체력이 쇠약하여 가는 임금의 앞에서 권신들은 또한 암투를 시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쇠약하고 너무도 무규칙한 생활을 하는지라, 언제 어떠한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겨날지 예측도 할 수가 없었다. 당연한 승통자(承統者)가 없는 임금인지라, 상서롭지 못한 일이 생겨나는 날에는, 승통자 영립문제로 한번의 분규가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 상감의 척신이자 또한 권신인 김문(金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신중히 고려해야 할 처지였다.

  

불행히 상감이 승하하는 날에는 그 승통자를 지정할 권리는 오로지 대왕대비 한 분에게 있다. 아무리 권문 김씨일지라도 '진주 종반 이씨'의 가문의 사자(嗣子)에까지 간섭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종반 이씨'의 가문에 사자되는 분이 또한 마땅히 이 나라의 지존이 될 분이다. 그러므로 현 상감 승하한 뒤에 신왕 영립에 대하여는 아무리 척신이요 권문인 김씨 일파일지라도 용훼할 권리가 없다.

  

이런지라, 김씨 문에서는 여기 대한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만약 대왕대비로서 엉뚱한 종친을 신왕으로 지적하여 놓으면, 김문의 세력에 큰 흔들림이 생길 뿐만 아니라, 잘못 하다가는 멸족의 참화를 볼지도 알 수 없다. 만약 불행히 현 상감이 승하하고 그 뒤에 영립되는 신왕이 김씨 일문을 밉게 보는 분이면, 김씨 일문의 오늘날의 권세는 하룻밤 사이에 꺾어져 버릴 밖에는 도리가 없다. 이 불행을 피하고 자기네의 권세를 자자손손이 누려 먹기 위하여는 여기서 비상한 수단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그들이 택한 방법이 소위 이하전 역모 사건(李夏銓逆謀事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