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면에 떠오르면서 기절할 때까지 차손이는 자루를 그냥 끼고 있었으므로 차손이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하인들은 알았다. 차손이가 깨어나기가 무섭게 하인들은 차손이를 발길로 차면서 지독한 도둑놈이라 욕하였다.

  

이튿날은 나합의 엄명을 들을 하옥 대신의 영으로 이 '지독한 도둑놈'을 포청에 내렸다. 뿐만 아니라, 차손이의 늙은 부모와 형과 형수―그의 온 집안까지 잡혀서 옥에 갇히게 되었다. 나주 합하의 노염은 여간 크지 않았다. 엄숙한 놀이를 깨뜨린 데 대한 분함, 자기의 신성한 눈으로 벌거벗은 상놈의 시체를 본 데 대한 분함, 자기의 겸인이며 하인들의 배에 잠시나마 송장을 태웠던 데 대한 분함, 엄숙한 시반을 도둑질해 낸 행사에 대한 분함―이런 모든 일 때문에 합하의 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그래서 이 하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상놈과 그의 일족을 당장에 박살을 하라고 하옥에게 엄명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나주 합하의 충복인 하옥일지라도 이 '지독한 도둑놈'과 그 일족을 박살까지는 할 만한 죄목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을 절충하고 타협한 결과로서, 이 중대 범인을 주범은 태형 백 개, 일족들은 오십 개씩을 때려서 내쫓기로 하였다.

  

양씨는 매우 불만족하였지만 드디어 하릴없이 여기 승복하였다.

  

이리하여 이 차손이는 시반을 도둑질하려던 죄로 엉덩이 뼈가 부러지도록 매를 맞고, 그의 가족은 그 밥을 바란 죄로 오십 개씩의 태형을 받고, 그 위에 자기네 조상 이래로 살아 내려오던 그 동리에서까지 쫓겨나게 되었다.

  

또한 최 서방은 도둑질도 채 하지 못하고 용왕의 노염을 사서 직접 피해자 양씨가 벌하기 전에 용왕께 극형의 벌을 받은 것이었다.

  

천벌을 받기는 받았지만도, 그런 고약한 놈들이 어디 있어. 대체 밥을 도둑질한댔자 몇십냥 몇백 냥어칠 도둑질해 내겠다고, 천벌도 모르고 그런 무서운 짓을 한담.”

  

양씨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이렇게 술회하고 하였다. 이 술회를 듣는 사람은 모두 머리를 조으며 천벌의 무서움을 탄식하였다.

  

“대감마님, 살려 줍시오! 갑자기 동리를 떠나면 어디가서 붙어 살겠습니까?”

  

뜰에 꿇어 앉아서 애원을 하는 것은 '지독한 도둑놈'이 차손의 늙은 아버지 이 서방이었다. 이 서방의 곁에 손을 읍하고 서서 이 서방의 애원할 때마다 허리를 굽실거려서 맞장구를 치는 것은 흥선댁 하인 누구였다. 대청에 긴 담뱃대를 물고 앉아서 이 애소를 듣고 있는 것은 무력한 공자 흥선이었다.

  

나주 합하의 엄명으로 동리를 쫓겨나게 된 이 서방의 일가는, 너무 딱하여 생각다 생각다 못 해서 그들이 가진 다만 한 가지의 방책을 써 보기로 한 것이었다. 즉 그들의 먼 일가가 흥선 댁에 하인으로 있는 것을 결련하여 흥선군에게 애소를 해서 피해 보려는 것이었다.

  

흥선의 무력을 그들도 모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짚이라도 붙들려는 물에 빠진 사람의 심정으로, 흥선에게라도 한 번 매달려 보려 함이었다. 이 이 서방의 애소를 흥선은 다분의 곤혹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종실의 한 사람으로서 흥선은 무론 하옥의 집도 자주 찾아 다녔다. 얼마만큼 호인적 기품을 가지고 있는 하옥은, 젊은 재상들같이 노골적으로 흥선을 모멸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의 이 일은 하옥의 일존뿐으로 좌우될 성질의 사건이 아니었다. 하옥의 뒤에 숨은 양씨의 마음으로라야 결정이 될 것이지, 하옥은 그 처결권을 가지고 있지를 못한 것이다. 영의정 하옥이로되 영의정의 지배자가 또 그 뒤에 있는 이상에는 영의정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