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都正) 이하전은 종친 가운데 꿋꿋한 사람이었다. 선조(宣祖)의 아버님인 덕흥 대원군의 정통 후계자(장손 줄기)인 이하전은, 마음이 굳고 활달하고 그 정치안이 또한 비범한 사람이었다. 다른 종친들이 모두 시정에 숨어 버리거나 낙향을 하여 버릴 동안, 이하전은 그냥 가운데 버티고 권문 김씨들에게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뿐더러 선왕 헌종이 승하하고 그 승통자가 없어서 종친 회의가 열렸을 때에 신왕의 후보자로 꼽히었던 사람이었다. 권 돈인(權敦仁)은,
“이 분이야말로 이 삼천리의 지배자로서 가장 적당한 분이다.”
고 역설하여, 하마터면 이십 오대의 조선 국왕이 될 뻔한 사람이었다.
불행히 그 때의 대왕대비 김씨의 의견 때문에 강화의 초동이 새 왕으로 영립되고, 이하전은 여전히 그냥 종친의 한 사람에 지나지 못하게 되었으나, 그 때의 신왕이던 현 상감이 승하하는 날에는 새 승통자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하전은 김씨 일문의 방자를 미워하는 사람이며, 마음 꿋꿋한 사람이며, 김씨 일문에게 미움을 받는 사람인지라, 이하전이 여차하는 날에는 김씨 일문은 근본적으로 망하여 버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었다.
거기 대한 대책으로 김씨 일문에서는 손을 먼저 걸기로 한 것이었다. 화근을 미리 없이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지 않도록 하려 함이었다.
“제 계획이 제일일 줄 압니다.”
이렇게 말하며 얼굴에 날카로운 미소를 나타낸 것은 김병필(金炳弼)이었다.
―김씨 일문의 회의였다.
좌장 격으로 하옥 김좌근이 있었다. 부원군 김문근은 몸이 편하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였다. 하옥의 양사자 김병기며, 김병학, 김병국, 김 헌근, 생질 남병철 모두 한 좌석에 모였다.
그들의 의논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한 먼 곳에 하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가까이는 이 일족 이외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 가운데서 그들은 이하전에 관한 의논을 하는 것이었다.
병학은 좀더 기다려 보자는 의견을 제출하였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니 갑자기 말자는 의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