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은 더욱 울었다. 숭의 말은 정선에게 위안을 주느니보다는 도리어 고통을 주었다. 왜? 정선이가 숭에게 대하여 미안한 것은 다리 하나 없는 것보다도 세상에 대하여 숭을 망신시킨 것이었다. 그보다도 뱃속에 있는 갑진의 씨였다. 그보다도 남편 아닌 사내의 씨를 배에 담게 한 제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것까지는 남편 앞에 자백할 수가 없었다. 남편이 안다 하더라도, 아니 남편이 미리 알고 있을 줄을 알기 때문에 더욱 자백할 수가 없었다. 남편의 앞에서 그 말을 자백하고 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었다. 다시 어떻게 그 얼굴을 들어 남편을 보이랴.

 

정선은 정조에 대하여 일시 퍽 너그러운 생각을 품었던 일이 있다. 그것이 아마 시대사조라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다리를 자르고 여러 달 동안을 가만히 누워서 안으로 스스로 살펴보면 볼수록 제가 한 일은 죄였다.

 

남편을 둔 아내가 다른 사내를 가까이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양심이 허락하지를 아니하였다. 게다가 뱃속에 그 죄의 증거가 들어 날이 갈수록 달이 갈수록 자라는 것은 마치 정선의 죄를 벌하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았다. 하나님이란 것이 없다 하더라도 자연의 법칙인 듯하였다.

 

뱃속에 든 아이는 나올 날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가 나오는 날은 정선의 파멸이 오는 날이 아니냐.

 

정선은 아무리 하여서라도 이 아이의 문제를 미리 꺼내어서 남편의 참뜻을 알려고 오래 두고 벼르던 입을 여러번 열려 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늘 못하였다. 오늘은 어떻게 하든지 이 말을 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고 정선은 생각하였다.

 

"여보시우!"

 

하고 정선은 고개를 들었다.

 

"왜"?

 

하고 숭도 무슨 생각에서 돌아왔다.

 

"내 뱃속에 있는 아이가 당신 아이가 아니오!"

 

하고 힘있게 말하였다. 그리고 숭의 입에서 나올 말을 차마 들을 수 없다는 듯이 두 손으로 귀를 꽉 막고 숭의 무릎에 이마 비비고 울었다.

 

숭은 죽은 듯이 한참이나 말도 없고 몸도 움직이지 아니하였다. 아마도 숨도 쉬지 않는 것 같았다. 벌써 다 아는 일이다. 숭은 다만 아내의 배에 든 아이가 누구의 아이인 줄을 알 뿐더러 그것이 누구의 아이인 것을 증거 세우기 위하여 서울 있는 동안에 아내와의 동침을 피하였다. 그러하건마는 정선의 입에서 이 말을 들을 때에는 벼락을 맞은 듯한 생각이 없지 아니하였다. 무릎 위에 엎드린 정선이가 제 아내인 것 같지 아니하고 무슨 지극히 더러운 물건인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정선을 아내로 사랑하나"?

 

이러한 의문까지도 일어났다. 숭은 정선에게 대한 제 감정을 한번 더 분석해 보고 재인식해보았다.

 

"사랑인가"?

 

하고 스스로 물으면 숭의 양심은 서슴지 않고 "그렇다"라는 대답을 잘 해주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정선은 희생자다. 불쌍한 인생이다. 육체로는 병신이요, 사회적으로는 버려진 사람이다. 그뿐더러 그의 성격이나 가정의 교육이나 학교의 교육이 그를 굳센 한 개성을 만들기에는 합당치 아니하였다. 그는 혼자 제 운명을 개척해갈 힘을 가지지 못하였다. 정선을 끝까지 보호해갈 사람은 숭뿐이었다. 만일 숭이 정선을 버린다면 정선은 그야말로 죽음의 길밖에 취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숭은 생각한다. 수색서 벌써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마는 숭도 사람이요, 젊은 사람이었다. 그의 마음은 늘 괴로왔다. 다만, 그 괴로운 감정을 굳센 뜻의 힘으로 눌러온 것이다.

 

그러다가 정선의 입으로 배에 든 아이가 숭의 씨가 아니라는 말을 들은 숭은 거의 감정과 뜻의 혼란을 일으킬 만큼 괴로왔다.

 

숭은 눈을 감았다. 넘치는 봄빛을 보았다. 흐르는 강물을 보았다. 그리고 무릎 위에서 몸에 경련을 일으켜 우는 정선을 보았다.

 

숭은 정선을 껴안았다. 힘껏 껴안고 정선의 입을 맞추었다.

 

"여보, 내가 당신을 수색에서 다시 아내로 삼았소. 두번째 혼인을 하였소. 당신의 배에 든 아이는 나와 혼인하기 전에 든 아이요. 그리고 하느님이 내게로 보낸 아이요. 나는 그 아이를 내 자식으로 일생에 길러주고 사랑해줄 의무를 하느님께서 받았소. 여보, 이로부터는 우리 둘이 서로 충실한 부부가 됩시다. 지나간 기억은 모두 저 강물에 띄워 보냅시다. 자 일어나오, 남들이 보면 우습게 알겠소. 우리 일어나서 좀더 산보합시다. 자, 자."

 

하고 정선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정선의 근육은 아주 힘이 빠진 것 같았다. 정선은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다. 다만 한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전신이 모두 눈물로 녹아나오는 것 같다.

 

정선의 배에 든 아이는 놀기를 그쳤다. 어머니의 슬픔을 아는 듯하였다.

 

하늘에서는 종다리의 울음이 들려왔다.

 

"조리조리 조리오, 조리조리 조르륵."

 

하는 종다리 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저 종다리 듣소"?

 

하고 숭은 정선을 안아 일으키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목발과 숭의 저고리가 땅에 산란하게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