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와서 밥을 먹는 동안에 선희와 유월은 정성으로 국과 반찬과 숭늉을 서브하였다. 사람들은 내외하는 예를 잘 차려서 도무지 선희를 거들떠보지도 아니하였으나, 그런 아름다운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은 그들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같은 무우국, 같은 곤쟁이 지지미도 보통보다는 맛이 더한 듯하였다. 불과 칠팔 인밖에 안되는 식구지마는 한 광주리 밥과 한 동이 국, 한 동이 막걸리, 한 동이 숭늉을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숭이 내놓는 불로연 한 통을 맛나게 피워 물었다.

 

천지는 더욱 빛이 넘치었다. 달내의 물은 더욱 유쾌하게 흐르는 것 같았다. 소는 콩과 조짚을 섞은 죽을 맛나게 먹으며 입을 우물거렸다.

 

"어 잘 먹었는걸."

 

"참, 맛난데."

 

하고 사람들은 선희가 들어라 하고 모두 칭찬들을 하였다. 정말 맛난 모양이었다.

 

여인네들은 비인 그릇을 담아서 이고 집 길로 향하였다. 오는 길에도 한갑 어머니와 순이는 길가에 있는 달래와 무릇과 메(마)를 캐었다. 선희의 눈에는 그것이 다 신기하였다. 달래 장아찌라는 것은 본 일이 있지마는 달래 잎사귀와 그것이 땅에 묻혀 있는 양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선희가 얼른 알아보는 것은 냉이였다. 그러나 냉이에 대가 서고 노란 꽃이 핀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하물며 무릇이란 것은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이, 먹는 풀이 많기도 하이!"

 

하고 선희는 놀랐다.

 

"그럼. 단오 전 풀은 독이 없어서 못 먹는 풀이 없다는 말이 있지."

 

하고 한갑 어머니가 설명하였다.

 

"풀만 먹고도 사오"?

 

하고 선희가 물었다.

 

"풀만 먹고야 살겠나마는, 요새야 풀 절반 좁쌀 절반으로 죽을 끓여 먹는 사람도 많지. 그거나 어디 저마다 있나. 방아머리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나물 캐러들 갔다가 허기가 져서 쓰러졌는데, 사람이 가보니께니 입에다가 풀을 한입 물었드래, 먹고 살겠다고. 그렇게 먹고 살기가 어렵다네."

 

하고 한갑 어머니는 곁에 있는 쑥을 캐어서 흙을 털어 귀중한 물건이나 되는 듯이 그릇에 담으며,

 

"서울서는 아무리 가난해도 풀 먹고 사는 사람은 없지"?

 

하고 선희를 쳐다본다.

 

"그러믄요. 서울서는 풀 먹고 사는 사람은 없답니다. 서울서는 개나 고양이도 쌀밥에 고기 반찬을 먹는 집이 많답니다."

 

하고 선희는 멀리 서울을 생각하였다. 벌써 떠난 지가 다섯 달이나 넘는 서울을, 번화한 서울, 향락의 서울을. 그 서울과 이 농촌과 무슨 관계가 있는고? 쌀 열리는 나무가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는 서울사람의 입에는 쌀밥이 들어가는데, 쌀을 심는 농민의 입에는 쌀밥이 안 들어가는 것이 이상도 하였다.

 

"에그머니, 하나님 무서워라, 원 쯧쯧. 어쩌면 사람도 못 먹는 밥을 개 짐승을 준담. 그래도 벼락이 안 떨어지나."

 

하고 한갑 어머니는 눈을 크게 뜨고 믿기지 아니하는 것처럼 선희를 보았다.

 

"사뭇 밥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답니다. 그러면 거지애들이 와서 주워가지요."

 

하고 유월이가 말참견을 한다.

 

"아이구 아까워라. 없는 사람을 주지, 밥풀 한 알갱이도 하늘이 안다는데."

 

하고 한갑 어머니는 더욱 놀란다. 그는 일생 쌀밥을 만나본 일도 별로 없지마는 일찍 밥풀 한 알갱이를 뜨물에 버린 일도 없었다. 반드시 집어먹었다.

 

"밥풀 내버리면 죄 된다."

 

고 한갑 어머니는 그 어머니 또 그 어머니에게 전해들은 것이었다.

 

가며가며 네 사람이 뜯은 나물이 한끼 반찬은 넉넉히 되었다. 선희는 땅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다들 잘 자시었소"?

 

하고 마루에 혼자 앉았던 정선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반가운 듯이 웃으며 물었다. 저는 다리가 없어서 나서 다니지 못하는 것이 슬펐다.

 

"그럼. 다들 어떻게 잘 먹었는지."

 

하고 한갑 어머니가 동이를 내려놓으며 대답하였다.

 

"이거 봐요. 그 국을 다 먹고 술도 다 먹고 밥도 다 먹고 반찬도 핥았다니."

 

하고 한갑 어머니는 만족한 듯이,

 

"어디 그렇게 만난 것들을 먹어들 보았나."

 

한다.

 

"참 잘들 자셔요."

 

하고 선희는 정선이와 단 둘이만 있으면 농부들이 먹는 양을 흉이라도 보고 싶었다.

 

"아이그, 어쩌면."

 

하고 순이와 유월이가 들어다 보여주는 비인 그릇들을 보며 정선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