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여울에 봄이 왔다. 달냇물이 기쁘게 부드럽게 흘러간다. 농촌의 봄은 물이 가지고 온다.
청명 때가 되면 밭들을 간다. 보삽에 뒤집히는 축축한 흙은 오는 가을의 기쁜 추수를 약속하는 것이다.
보잡이(밭을 가는 사람)는 등에 담뱃대를 비스듬히 꽂고, 길단 채찍을 들어 혹은 외나짝 소를, 혹은 마라짝 소를 가볍게 후려갈긴다. 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흔들하면서 걸음을 맞추어서 간다. 그들은 사래 끝에 오면,
"마라 도치."
하는 보잡이의 돌라는 명령을 알아듣고 방향을 돌린다.
"외나."
"마라."
하는 구령을 소들은 장관의 명령을 잘 알아듣는 병정들과 같이 잘 알아듣는다. 송아지로서 처음 멍에를 메인 놈은 말을 잘 듣지 않다가 매를 맞지마는, 삼년 사년의 익숙한 소는 제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잘 안다. 그가 가는 밭에서 나는 낟알과 짚 중의 한 부분은 그가 겨우내 먹을 양식이 되는 것이다.
소는 농부의 가족이다. 그 동리 사람은 멀리서 바라보고도 저것이 누구의 집 소인 줄을 안다. 그 소의 결점도 알고 장처도 안다. 만일 어느 집 소가 다리를 전다든지 무슨 병이 났다고 하면 그것은 다만 소 임자 집에 큰 사건만 아니라, 온 동리에 관심사가 된다. 소 니마(소의 연)를 부르고 무꾸리를 하고 무르츠개(귀신을 한턱 먹여서 물리는 일)를 하여야 한다.
"이랴 이랴, 쯧쯧!"
하고 두르는 보잡이의 채찍에 봄볕이 감길 때에 땅에 기쁨이 있다.
소가 지나간 뒤에는 고랑 째는 사람이 따른다. 그는 한 손에 굵다란 지팡이를 들고 한 발로 밭 이랑의 마루터기를 째고 나간다. 그 뒤를 따라서 재놓이가 따른다. 그는 삼태기에 재를 담아 가지고 고랑 짼 홈에다가 재를 놓는다. 비스듬히 옆으로 서서 재 삼태기를 약간 흔들면서 걸어가면 용하게도 재가 검은 줄을 일러서 고르게 퍼진다.
만일 조밭이나 면화밭을 간다고 하면 자귀밟이가 있을 것이요, 보리밭이나 밀밭이라 하면 고랑 째는 것도 없고 자귀밟이도 없을 것이다.
자귀밟이는 제일 어린 숙련치 못한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는 고랑의 홈을 한 발을 한 발의 끝에 자주자주 옮겨놓아서 씨 떨어질 자리를 다지는 것이다. 그 뒤로 밭갈이에 가장 머리 되는 일이 한 겨리에 가장 익숙하고 어른 되는 사람의 손으로 거행되는 것이다. 그것은 씨 뿌리는 일이다.
적어도 삼십 년 이상 밭갈이의 경험을 쌓은, 그리고도 수완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종자놓이"라는 이 명예 있는 지위에 오를 수는 없는 것이다. 살여울 네 겨리 중에 숭이가 든 겨리의 종자놓이는 돌모룻집 영감님이라는 쉰댓 된 노인이다. 그는 일생에 부지런히 일하고 아끼고 하는 덕에 논마지기 밭 낟가리도 장만하고, 짚으로나마 깨끗하게 집도 거두고, 동네 사람들의 대접도 받는 노인이다.
그는 말이 없다. 벙어리와 같이 말이 없다. 그리고 쥐와 같이 부지런하다. 집에 가보면 언제나 무엇을 하고 있다. 그의 감화로 그집 아들, 딸, 며느리가 다 그렇게 말이 없고 부지런하다. 조용하게 일만 하는 집이었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옆구리에 종자 뒤웅을 차고 뒤웅에 손을 넣어서는 종자를 한줌 쥐어서 말없이 솔솔 뿌리며 간다. 고개를 비스듬히 숙이고 한편 어깨를 축 처뜨리고 언제까지든지 씨를 뿌리고 영원히 씨를 뿌리고 가려는 사람과 같이 긴 사래를 오락가락한다.
"시장하지 않으시우"?
하고 자귀밟이 하는 젊은 사람이 지나는 길에 물으면,
"어느새에."
하고 그는 씨를 뿌리며 간다.
돌모룻집 영감님이 노란 씨를 뿌리고 지나가면 그 뒤에는 이 동리에서 익살꾼으로 유명한 쌍동이아버지라는 노인이, 연해 우스운 말을 해서는 사람들을 웃기며 묻는 일을 한다. 그는 아직 머리에 상투가 있다. 상투라야 흔적뿐이지마는 머리 가으로 헙수룩하게 희끗희끗한 두어서너 치나 되는 머리카락들이 여러 가지 각도와 곡선을 그려서 흘러내리고 있다. 그는 아마 머리를 안 빗는 모양이었다.
이 노인을 쌍동이아버지라고 일컫지마는, 그 쌍동이는 언제 나서 언제 죽었는지 젊은 사람들 중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그 며느리가 꽤 오래 수절을 하다가 달아나버렸다는 전설 때문에, 그 쌍동이 중에 적어도 하나는 사내였고 또 장가를 들었던 것까지는 추측할 수가 있었다. 그는 지금도 아들도 딸도 없이, 그와는 반대로 생전 말 한마디 없는 마누라하고 단둘이 살고 있다. 살고 있다는 것보다도 죽기를 기다리고 있다.
"젊은 놈들이 어느새에 배가 고파? 우리는 젊었을 적에는 사흘쯤은 물만 먹고 하루 백 오십 리는 걸었다. 그리고도…."
이 모양으로 쌍동이아버지는 인제는 낮이 기울었으니 점심을 먹고 하자는 젊은 사람들을 책망하면서 두 발을 번갈아 호를 그려 씨를 묻고 간다. 젊은 사람들은 이 늙은이의 이러한 평범한 말에도 웃음을 느껴서 소리를 내어 웃는다.
"왜 하루에 천 오백 리는 못 걷고 백 오십 리만 걸었소"?
하고 한 젊은 사람이 빈정대면 쌍동이아버지는,
"해가 짧아서 못 걷지, 걷기가 싫어서 못 걷나."
하고 눈을 부릅뜨며 쌍동이아버지는 항의를 하였다. 그러면 젊은 사람들은 또 웃었다.
"이놈들, 웃으니께니 배가 고프지."
하고 쌍동이아버지는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