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도 웃음을 삼키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외나 외나! 쯧쯧!"
하는 보잡이의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면 소들은 벌써 뽕나무 밑 마지막 이랑을 갈고 있었다. 늘어진 뽕나무 가지가 소에게 스치어, 우지끈우지끈 소리를 내며 부러져 떨어진다.
씨 뿌리는 돌모룻집 영감님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발에 묻은 흙을 털면서 밭둑으로 나설 때는 그로부터 오 분이나 뒤였다. 이 노인은 손에 들었던 씨를 다시 뒤웅에 넣는 것을 수치로 알았다. 이 밭에는 씨가 몇 되, 줌으로 몇 줌 드는 것까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맨 끝에 발을 툭툭 털고 밭에서 나서는 이가 쌍동이아버지였다. 이때에는 젊은 사람들은 벌써 담배를 한 대씩 피워물었다.
"누구 나 담배 한대 다우."
하고 쌍동이 아버지가 시꺼먼 손을 내밀었다.
"드리고는 싶지마는 전매국 사람이 볼까봐서 못 드리갔수다."
하고 한 젊은 사람이 반쯤 남은 희연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영감님은 입만 들고 댕기시우"?
하고 곁에 섰던 젊은 사람이 웃었다.
"에끼 이놈들."
하고 쌍동이아버지는 또 옛날은 제 집에 담배를 심었던 것과 온 동네에서 제 집 담배가 고작이던 것을 자랑하였다. 이것은 담배를 얻어먹을 때마다 쌍동이 아버지가 하는 말이었다.
"호랑이 담배 먹을 적에 말이오"?
하고 희연 가진 젊은 사람이 저 먹던 담뱃대와 희연을 쌍동이아버지에게 준다.
쌍동이아버지는 아직도 뜨거운 대통을 후후 불어 식혀가지고 담배 한 대를 담아서 땅에 떨어진 담뱃불에 붙인다. 그 껍질만 남은 뺨이 씰룩씰룩한다.
봄의 황혼은 유난히도 짧고 또 어둡다. 해가 시루봉 위에 반쯤 허리를 걸친 때부터 벌써 땅은 어두워진다. 마치 촉촉한 봄 흙에서 어두움이 솟아오르는 듯하였다.
산 그늘에 지껄지껄하는 소리를 듣고야 비로소 희끄므레하게 겨리꾼들이 돌아오는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집들의 굴뚝에서 나던 밥 잦히는 연한 자줏빛 연기조차 인제는 다 스러지고, 주인을 기다리는 밥그릇들은 이빠진 소반 위에서 김을 뿜고 있었다.
"아버지 오나 봐라!"
하는 소리가 부엌에서 나올 때에 어느새부터 맨발이 된 아이들은 강아지들 모양으로 사립문에서 뛰어나왔다. 그래서 아버지를 붙들고 매달리고 끌고 들어왔다.
"허리 아프다."
하고 매달리는 어린것들을 뿌리치기는 하면서도 머쓱해 물러선 어린것의 손을 잡았다.
"다 갈았소"?
"좀 남았어, 넘은집 소가 다리를 절어서."
하고 남편은 만주 조밥을 맛나는 듯이 잔뜩 입으로 몰아넣는다.
어떻게들도 달게 먹는지, 만주 조밥과 쓴 된장을 어른이나 아이나 도무지 아무 소리도 없이 서로 얼굴도 아니 보이는 어두운 방안에서 그들은 꿀같이 달게 먹는다. 전 같으면 만주 조 한 말에 쌀 두 말을 주기로 하고 꾸어 먹지 아니하면 아니되었지마는, 금년에는 허숭이가 만든 조합이 고마와서 만주 조 한 말에 벼 한 말 주기로 하고 농량은 꾸어 먹을 수가 있었다.
씹는 소리도 날 것이 없었다. 씹을 것이 있나. 풀 없는 조밥은 날아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이 모두 오 분이나 될까. 밥으로 곯은 배를 숭늉으로 채우고 나면 가장은 아랫목에 잠깐 기대어 앉아서 부엌에서 아내의 설겆이하는 소리를 들으며 생각을 한다. 이것이 농부의 유일한 인생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어느덧 이구석 저구석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뛰놀고 배고파서 지쳤다가 배만 불룩하면 쓰러져 잠이 들고 만다.
벌써 빈대가 나오기 시작한다. 목덜미와 허리가 뜨끔뜨끔하지마는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가장은 하루 종일 밭 갈기에, 또 일생 영양 불량과 과로로 등을 방바닥에 붙이기만 하면 천길 만길 몸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허리는 안 아프우"?
하고 눈에 뜨이게 늙고 쇠약해가는 남편을 근심하여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문질러주다가 그 역시 잠이 들어버리고 만다. 그러다가 누구든지 먼저 잠이 깨는 사람이 때 묻은 이불을 내려서 식구들을 덮어주고, 저는 발만을 한 귀퉁이 속에 집어넣고는 잠이 들어버린다.
가장이 눈을 뜰 때에는 부엌에서는 벌써 아내가 밥을 안치고 불 때는 소리가 들린다.잘 마르지도 아니한 수수그루, 조그루는 탁탁 요란한 소리만 내고 연기만 내고 도무지 화력이 없었다.
"오늘은 뉘 밭 가우"?
"허 변호사네 밭 갈 날이야."
"응, 그럼 점심은 잘 먹겠구먼."
"허 변호사네 집에 좀 가보라구. 물이라두 좀 길어주어야지. 다리 없는 여편네 혼자 있으니. 원, 한갑이어머니허구 순이허구는 오겠지마는."
이것이 이 집 내외가 아침밥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말이었다.
"나 밥."
"나 오줌."
하고 아이들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