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희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정선에게로 내어 댄다.
정선은 핀세트로 탈지면을 집어서 옥도정기를 발라서 상한 데를 씻고 가제를 감고 솜을 대고 그리고는 붕대를 감아서 제법 간호부가 할 일을 하였다.
"내가 무어랬어, 팔이 아프거든 쉬라고."
하고 정선은 선희를 책망하였다.
"아야 아퍼, 으스."
하고 선희는 싸맨 손가락을 한 손으로 가만히 쥐어 가슴에 대었다.
해가 높았다. 따뜻하기가 여름날 같았다. 동네에서 달내강을 끼고 한 마장이나 올라가 있는 숭의 밭에서는 소와 사람이 다 땀을 흘릴 지경이었다. 재 놓는 봇돌이라는 젊은 친구는 온통 웃통을 벗어붙이고 재를 놓았다.
"웬 날이 갑자기 더워지누."
하고 말없는 돌모룻집 영감님이 종자 놓던 손으로 이마의 땀을 씻으며 중얼거렸다.
"다 더울 때가 되니까 더워지고, 물 오를 때가 되니까 물이 오르지."
하고 뒤를 따르는 쌍동아버지가 대꾸를 하고는 제 말이 잘되었다는 찬성의 표정이나 보려는 듯이 둘러보았다. 젊은 사람들은 짐짓 못 들은 체를 한다.
"배고플 때가 되니께 배가 고프구."
하고 자귀밟이 중에 어느 젊은 사람이 쌍동아버지 어조로 흉내를 낸다.
모두 "하하하하" 웃는다.
"엑 이놈! 어른 흉내 내면 불알이 떨어지는 법이야, 고얀놈들 같으니."
하고 씨 묻던 발을 탕 구르며 쌍동아버지가 그에게 호령을 한다.
"하하하" 하고 또 웃는다.
모두들 헛헛증이 났다.
숭의 집이면 서울 솜씨로 반찬이 맛나리라고 다들 예기하고 있었다. 그들 생각에 서울사람이 먹는 음식은 도저히 시골음식에 댈 바가 아니라고 믿는다.
강가로 점심을 인 여인네 일행이 오는 것이 보일 때에는, 밭 갈던 사람들의 피와 신경은 온통 혓바닥으로 모이는 것같이 입에 침이 돌고 출출한 생각이 못 견디게 더 났다. 소들까지도 침을 더 흘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이고 들고 한 여인네들이 점점 가까와지는 것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저것은 유순이, 저것은 죽었다고 신문에 났다던 산월이라는 선희, 하고 꼽았다. 한갑이어머니는 꼽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왜 그런고 하면 한갑의 어머니는 그들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낯익은 존재였다.
순이는 밥과 국물 없는 반찬을 담은 광주리를 이고, 한갑 어머니는 국동이를 이고, 선희는 숭늉동이를 이고, 유월이는 막걸리동이를 였다. 유순이나 한갑 어머니는 한 손으로 머리에 인 것을 붙들고도 몸을 자유롭게 놀리지마는, 선희와 유월이는 두 손으로 꽉 붙들고도 몸을 자유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밭머리 잔디 난 곳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선희의 머리에서는 숭늉이 흘렀고 유월의 머리에서는 막걸리가 흘렀다. 숭은 자귀를 밟다 말고 뛰어나와서 여인네들의 인 것을 받아 내려주었다. 다른 젊은 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워하였다.
숭은 선희가 농가 여자의 의복을 입고 이 지방 부인네와 같이 수건을 폭 눌러 쓴 것을 바라보고 빙긋 웃었다. 선희도 웃었다. 유월이가 곁으로 와서 선희의 손을 잡아 쳐들면서 숭에게,
"이것 보셔요. 이렇게 무우를 썰으시다가 손가락을 베시었답니다. 손톱 아울러 베시었답니다."
하고 싸맨 선희의 손가락을 보인다.
"글쎄, 그 고운 손으로 내가 써는 것을 썰다가 그렇게 되었다누. 에그 가엾어라."
하고 한갑 어머니가 혀끝을 찬다.
"약 바르시었소"?
하는 숭의 말에,
"네. 약 발랐어요. 그러해야 배우지요."
하고 선희도 웃는다.
"학교에서야 그런 유즈풀 아트를 배우실 수 있어요"?
하고 숭은 만족한 듯이 다시 밭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