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에게 준 이건영의 타격은 순례에게보다도 순례의 아버지에게 더 아픈 영향을 주었다. 딸을 사랑하는 그는 이 사건 때문에 십 년은 더 늙은 듯하였다. 시체 사람들 모양으로 입 밖에 내어서 말은 아니하지마는 가끔 비분한 생각이 치밀어서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리해서 이 슬픔은 순례의 아버지의 성격을 침울하게 만들어 버렸다.
순례는 달을 바라보았다. 어려서부터, 보통학교, 고등학교 시절부터 바라보던 달이요, 이건영과 약혼한 뒤에 그 속에 건영의 얼굴을 그리며 바라보던 달이었다. 어디서나 달을 보면 순례는 건영을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순례가 이 박사와 단둘이 외출하기를 허락받은 첫날 밤에 남산공원에서 달을 가리키고 산을 가리켜 서로 사랑이 변하지 말기를 맹약한 까닭이었다. 그때에 이 박사는 순례의 귀에 입을 대고 영어로,
"저 달이 빛나는 동안, 저 하늘이 있는 동안!"하고 세번 맹세를 주었다.
그때에 순례는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것이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순례는 미국에 있는 동안이나 미국을 떠나서 조선에 올 때에도 이건영에게 대한 생각을 떼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달을 떼어버릴 수가 없는 것과 같이 그 생각을 떼어버리기가 어려웠다. 반드시 그리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건영의 인격에 대하여 침을 뱉고 싶게 불쾌한 생각을 가지지마는, 그래도 이모저모로 잊히지를 아니하였다. 그의 미운 모양이 순례를 더 괴롭게 하였다.
"내가 왜 이렇게 약해"
하고 순례는 머리를 흔들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이튿날, 한 선생이 순례의 집을 찾아왔다.
한 선생은 순례의 부모를 향하여 어젯밤에 생긴 일을 위로하고 순례를 향하여,
"너 여행 좀 안해 보련? 지금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돈 많고 문명했다는 미국에 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문명 못한 조선 시골 구경을 좀 해보지."
하였다.
어젯밤에 일어난 일로 순례에 관한 소문은 반드시 높을 것이었다. 새학기부터 모교에서 교편을 들기로 대개 내정을 하였지마는, 어젯밤 사건이 그 일에 어떠한 방향 전환을 줄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순례도 좀 서울을 떠나고 싶고 순례의 부모도 딸이 잠시 어디 소풍을 하는 것이 좋을 것같이 생각되었다. 그래서 한 선생을 따라 살여울에 가보기로 곧 작정이 되었다.
서울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순례의 가슴이 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살여울 가면 정선이도 있고, 선희도 있지. 너 알지"?
하고 한 선생은 순례를 기쁘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럼요."
하고, 순례도 오래 못 만난 정선과 선희를 만날 것을 기뻐하였다.
"그래라. 선생님 따라가서 구경이나 잘 해라. 선생님 말 일리지 말구."
하고 순례 어머니는 어린애 타이르듯 딸에게 말하였다.
밤 열시 이십분 경성역을 떠나는 북행에는 한민교를 전송하는 사오십 명 남녀가 있었다. 그 전송객 중에는 한은 선생도 있고, 홀 부인도 있고, 정서분도 있고, 현 의사도 있었다.
한 선생은 안동포로 지은 쯔메에리 양복에, 인제는 전 조선에서 몇 개 안 남은 총모자를 썼다.
한 선생은 평생에 소원이던 농촌 경영, 농촌 진흥운동의 기회를 잡은 것이 기뻤다. 그는 전송 나온 사람들에게 유정근을 일일이 소개하였다.
"이 이가 유정근씨요. 전재산을 내어놓아서 농촌 운동을 하시는 이인데, 조선에 이런 독지자가 열 분만 나기를 바라오."
하고 유쾌하게 웃었다.
한 은 선생의 손을 잡고는, 한 선생은 유정근을 소개한 뒤에,
"유정근씨 말씀을 들으니까 정선이가 광당포 치마 적삼을 입고 아주 농부가 다 되었답니다."
하였다.
따르르하고 차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나자 사람들은 한 선생과 마지막 악수를 교환하였다. 맨 나중 한 선생이 차에 오르려 할 때에 어떤 농군모 쓰고 고의적삼만 입은 청년 하나가 나와서,
"선생님."
하고 한 선생을 불렀다.
한 선생은 발을 멈추고 그 청년을 바라보았다.
"갑진이올시다."
하고 농모를 벗었다.
"어, 갑진군인가."
하고 한 선생은 놀라며 갑진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 그리고 갑진의 차림차림을 훑어보았다.
"어서 오릅시오. 저도 신촌까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하고 한 선생의 뒤를 따랐다.
전송하던 사람들도 갑진이라고 하는 말에 한번 놀라고 그 초췌한 행색에 두 번 놀랐다.
차는 떠났다. 한 선생은 삼등차의 승강대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일일이 전송하는 인사에 대답하였다.
순례는 한 선생의 어깨 뒤에 숨어서 아무쪼록 사람의 눈을 피했다.
"이리 와 앉게."
하고 한 선생은 갑진에게 자리를 권하며,
"그런데 대관절 그 동안 어디 가 있었나. 이삼 년 동안 도무지 소식을 못 들었네그려."
하고 갑진의 볕에 그을은 초췌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말씀하지요. 저는 그 동안 검불랑 가 농사했습니다."
"검불랑"?
하고 한 선생은 더욱 놀란다.
"네, 평강 검불랑 말씀야요. 허숭 군의 예심 결정서를 보고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검불랑으로 갔습니다. 가서 만 이년 간 농부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이번 소비조합 물건을 사러 서울을 왔던 길인데, 선생님이 살여울로 가신다기에 잠깐이라도 만나뵐 양으로 퍽 주저하다가 나왔습니다."
하고 갑진은 유쾌하게 웃는다.
"어째 내 집엘 안 왔나"?
하고 한 선생은 갑진의 수목 고의 입은 무릎을 친다.
"아직 찾아뵈올 때가 못되니깐요. 아직 사람이 다 안되었으니깐요. 사람이 될 만하거든 찾아뵈오려고 했지요, 하하. 도무지 꿈 같습니다, 선생님."
하고 웃는다. 그 소리내어 웃는 모양만이 갑진의 옛 모습이었다. 차가 신촌에 서려 할 때에 갑진은 한 선생과 악수하며,
"선생님. 제일 선생님 말씀을 안 듣던 저도 필경 선생님을 따르노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명년쯤 한번 검불랑도 와 주십시오."
하고 뛰어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