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밤에 작은갑의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어떻게 하려나 하고 겁을 집어먹고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애초에는 남편이 자기를 건드리면,

 

"왜 이래"?

 

하고 뿌리쳐서 핀잔을 주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으나, 정근을 때려눕히고 막 때리는 양을 보고는 겁이 나서 감히 남편에게 반항할 용기가 없었다. 그러나 작은갑은 밤이 새도록 곁에 아내라는 여자가 있는 것을 잊어버린 듯하였다. 작은갑의 아내는 도리어 자존심을 상하는 불쾌감을 느꼈다.

 

아침에 일찌감치 작은갑은 부시시 일어나서 정근의 집을 찾아갔다. 어깨와 옆구리와 아픈 데가 많다.

 

마당에 화초도 심고, 서양 종자 사냥개도 놓고, 말도 매고 상당히 부르조아식으로 꾸민 정근의 "학생 첩의 집" 문 밖에 선 작은갑은 짖고 대드는 개를 발을 굴러 위협하면서,

 

"정근이! 정근이."

 

하고 무거운 어조로 두어 번 불렀다.

 

"누구셔요"?

 

하고 건넌방 문을 방싯 열고 내다보는 것이 "여학생 첩"인 모양이었다.

 

작은갑은 그 여자의 말은 들은 체 만 체하고,

 

"정근이! 낼세, 작은갑이야. 한 마디 할 말이 있어서 왔네."

 

하고 신을 벗고 마루끝에 올라선다. 이 집은 서울집 본으로 지었다.

 

학생 첩이라는 여자는 작은갑이라는 말에 혼비백산하였다. 마치 지옥에서 온 사자나 보는 것같이 몸서리를 쳤다.

 

작은갑은 들어오란 말도 없는 주인의 방에 들어섰다. 일본식 모기장이 앞을 탁 가리웠다. 작은갑은 모기장을 한 손으로 움켜쥐어 득 잡아당기어 걷어버리고 정근이가 누운 곁에 풀썩 앉으며,

 

"정근이!"

 

하고 한번 더 크게 불렀다.

 

정근은 비로소 잠이 깬 것처럼 찌그러진 눈을 떠서 작은갑을 바라보았다. 정근은 도장과 돈 있는 곳을 한번 생각하고, 만져보고, 그리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정근이, 내가 온 것은 다름이 아니야. 자네 한 사람 때문에 허 변호사라든지, 백선희씨라든지, 또 내라든지 아무 죄없이 징역을 지게 되고, 그뿐 아니라, 자네 한 사람 때문에 모처럼 살아가려든 이 동네가 다 망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곰곰이 생각하니까 자네를 죽여버리는 것이 이 동네를 살리는 일이 될 것 같아. 그래서 자네를 내가 마저 죽여버리려고 왔네."

 

"사람 살리우!"

 

하고 정근은 소리를 치며 일어났다. 그러다가 작은갑의 눈을 보고는 문득 태도가 변하여 작은갑의 앞에 절하는 모양으로 엎드리며,

 

"살려 주우. 내가 다 죽을 죄로 잘못했으니 살려 주우. 우리가 앞뒷집에서 자라난 정리를 생각해서 목숨만 살려 주우. 여보, 여보. 이리 와서 인사드리우. 우리 어려서부터 친구가 오셨소. 여보 애희, 이리 오우. 차라도 만들고, 우선 이리 와서 인사부터 하구."

 

하고 정근은 반쯤 정신 나간 사람 모양으로 허둥댄다. 아홉시가 지나면 주재소장이 들르기로 되었지마는 인제 여섯시도 다 안되었으니 아침 아홉시까지는 무사히 지내도록 온갖 수단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낸들 사람을 죽이고 싶겠나, 그렇지마는-."

 

하고 말하려는 작은갑을 가로막으며,

 

"그야 자네가 분하게 생각할 줄도 알아, 그렇지만 그건 오해야. 자네 입옥 후에 자네 아버지가 무얼 좀 도와 달라고 그러시니까, 그때 마침 이 집을 지었고 해서 참, 자네 부인더러 우리 집 일을 좀 보살펴 달라고 그랬지. 그게 벌써 삼년이 아닌가.

 

그 동안에 매 삭에 먹고 이원이라고 정했지마는 돈일세, 옷감일세, 또 양식일세 하고 자네 집에 간 것이 해마다 백원어치는 될걸. 허지만 다 아는 처지니까 그래, 그래 나도 잘못한 게야 있지-. 그저 모두 잊구 오해를 풀어 주게, 응. 그럼 자네가 분할 테지. 그럼 오해될 것도 없지. 응, 그저 다 오해야."

 

작은갑은 정근의 말뜻을 짐작하느라고 정근의 눈과 입과 손을 눈도 깜짝하지 아니하고 바라보다가,

 

"응, 나는 내 아내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닐세. 젊은 며느리를 자네와 같은 색마의 집에 보내는 우리 아버지가 그르지. 또 내 아내가 절개가 곧으면야 누가 무에라기로 까딱 있겠나. 그러니까 나는 내 아내 문제를 문제로 삼지 않네. 누가 옳은지 그른지 오지자웅을 알 수 있나. 다만 내가 그 여자의 서방이니까 자네를 죽인 칼로는 그 계집마저 죽일 수밖에 없지. 분통이 터져서 못 견디겠으니까.

 

그렇지마는 내가 자네를 죽이려는 것은 이 동네를 위해서야. 자네가 삼년만 더 살아 있다가는 이 동네가 쑥밭이 되고 말 것이요, 삼년이 되기 전에 자네와 자네 집 식구는 이 동네 사람들의 성난 손에 타 죽거나 맞아 죽거나 찔려 죽거나 할 터이니, 그리되면 살여울 동네는 왼통 쑥밭이 되고 마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말야, 나허구 자네허구 죽어버리면 이 동네는 산단 말일세. 자네도 죽기는 싫겠지. 나도 죽기는 싫으이.그렇지만 나는 꼭 자네를 죽이고야 말테니 그리 알게."

 

하고 한 손에 들었던 수건뭉치를 탁 털어서 날이 네 치나 되는 일본식 식칼을 내어든다.

 

"이 사람, 제발 살려 주게. 이 사람, 작은갑이, 제발 살려 주게. 무어든지 자네가 하라는 대로 다 할 테니 살려만 주게. 여보 이리 좀 와요."

 

하고 정근이가 미닫이를 열어젖히려는 것을 작은갑이가 정근의 팔을 꽉 붙들어서 제자리에 앉힌다.

 

정근은 제 몸의 어느 구석에 칼날이 들어가는 줄만 알고는,

 

"아고고."

 

하고 눈을 희번덕거린다. 그리다가 작은갑의 손에 들린 칼에 피가 흐르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서야 숨을 헐떡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