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근이가 작은갑이를 싫어하는 데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작은갑의 아내에 관한 것이었다.

 

작은갑의 아내는 작은갑이가 옥에 들어갈 때에 겨우 열여섯 살이었다. 열두 살에 민며느리로 와서 열다섯 살에 머리를 얹고(혼인한다는 말) 내외 생활을 한 지 일년 만에 옥에 들어간 것이었다.

작은갑이가 옥에 들어갈 때에는 면회하러 온 아버지(돌모룻집 영감님)에게 제 아내를 날마다 숭의 집에 보내어 그집 일을 도와 주게 하라고 부탁하여서 한 이태 동안은 그리하였다.

 

그러다가 정근이가 여학생 첩을 얻어서 따로 집을 잡은 뒤에는 여러 가지로 꼬여서 작은갑의 처를 한 달에 이원씩 월급을 주기로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학생 첩의 시중을 들게 했다. 밥도 짓고, 물도 긷고, 세수물도 놓고, 빨래도 하고 그리고 자리도 깔고, 걷고, 어멈 비슷, 몸종 비슷한 일을 하였다. 월말이면 월급 외에 인조견 치마채, 저고리감도 주었다.

 

정근이가 작은갑의 처를 이렇게 불러다가 쓰는 것은 결코 그의 서비스만을 위함이 아님은 물론이었다. 열여덟, 열아홉 살의 통통한 그 육체에 마음을 두었음은 물론이었다. 동네에는 한 달이 못하여 소문이 났다. 학생 첩과 정근과의 사이에 싸움이 나면 그것은 작은갑의 처 때문이라고들 다 추측하였다. 아마 그럴 것이다.

 

"아가, 너 학생 첩네 가지 말아, 가더라도 해지기 전에 돌아와."

 

이 모양으로 시아버지의 말을 듣는 일도 작은갑의 처에게는 있었다.

 

"한 달에 스무 냥이 얼마야요."

 

하고 며느리는 뾰로통하였다.

 

아들과는 딴판으로 사람이 좋기만 한 돌모룻집 영감님은 그 이상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이 촌에서 인조견 옷을 걸치고 낯에 분기운을 보이고 다니는 며느리의 꼴은 시아버지 눈에 아니 거슬릴 수 없는 풍경이지마는 명절이 되어도 며느리 옷 한 가지도 못해 주는 시아비로는 그 이상 더 책망할 수도 없었다. 오직 월말이면 지전 두 장을 꽁꽁 뭉쳐다가 시아버지 앞에 내어놓는 것만 눈물겹게 생각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러한 때에 돌아온다는 작은갑이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며느리가 지어 놓은 작은갑의 옷 한 벌을 가지고 며느리가 번 돈으로 차비를 해 가지고 형무소까지 아들 마중을 갔던 것이었다.

 

작은갑이가 살여울에 돌아온다는 날(그날은 곧 선희도 돌아오는 날이다) 동네 청년 육칠 명은 저녁차에 두 사람을 맞으러 일을 쉬고 정거장까지 나아갔다. 정선이도 고무다리를 끌며 을란을 데리고 우물곁까지 나와서 기다렸다.

 

이 우물은 정선과 을란은 모르지마는, 이제는 벌써 오륙 년 전에 유순이가 바가지로 이슬 맺힌 거미줄을 걷고, 식전 물을 길으면서 숭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데다. 순의 무덤이 바로 이 우물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도 이상한 인연이었다.

 

유순의 무덤은 벌써 새 무덤의 빛을 잃었다. 다른 낡은 무덤과 같이 풀로 덮이었다. 정선은 명년 추석에 을란을 보내어서 이 돌아볼 사람 없는 유순의 무덤과 한갑 어머니의 무덤을 돌아보게 하였다. 예수교 학교에서 자라난 정선이라 음식을 벌여 놓는 것은 아니지마는 풀이나 뜯어 주고 꽃포기나 심어 주었다.

 

정선은 우물가에 서서 순의 무덤을 바라보았다. 을란도 따라서 바라보았다.

 

"여기 오신 지가 몇 해야요"?

 

하고 을란은 감개를 못이기는 듯이 물었다.

 

"벌써 오년째다. 우리가 농사를 네 번이나 짓지 아니했니"?

 

하고 정선은 서울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부모 생각도 나고, 집 생각도 났다. 떠난 지 사오 년이 되어도 소식도 없는 집! 그러나 그것은 그리운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선의 머리는 속으로 돌려졌다. 거기는 남편이 흙물 묻은 옷을 입고 있다. 사오 차 면회도 하였고, 이따금 편지도 오지마는 앞으로 아직도 이태를 남긴 남편의 돌아올 기회가 막연하였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다. 지평선 위에는 구름 봉우리들이 여러 가지 모양과 여러 가지 색채로 변하였다. 논김을 매는 사람들이 석양 비낀 볕에 마치 신기루 모양으로 커다랗게 떠오르는 것이 바라보였다.

 

"으어허 허으허."

 

하는 소리밖에는 말뜻도 알아볼 수 없는 메나리 소리가 들려 왔다. 배고프고 피곤한 것을 이기려는 젊은 농부들의 억지로 짜내는 소리였다. 장에 갔다가 돌아오는 장돌림의 당나귀 방울 소리가 들리고, 맥고자 밑에 손수건을 늘인 장꾼들이 새로 산 듯싶은 부채를 부치며 지껄이고 가는 것이 보이었다.

 

이윽고 작은갑이와 선희 일행이 무너미 고개를 넘는 것이 보였다. 뒤에 따라오는 것은 정선이가 돌모룻집 영감님 편에 부친 제 옷(예전 서울서 입던 옷)을 입고 제 파라솔을 받은 선희였다.

 

"저기 오시네."

 

하고 을란도 반가와서 따라갔다. 머리를 치렁치렁 땋아 늘인 커다란 계집애다. 정선도 절뚝절뚝하며 몇 걸음을 더 걸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