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뙤약볕에 논밭에 김을 매는 것이 그렇게 수월한 일이 아니다."

 

"알아요. 그래두 전 해요! 혼자 서울은 안 가요. 언제까지든지 살여울 살 테야요."

 

하고 을란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씻는다.

 

"고맙다. 그러자, 응. 우리 둘이 여기서 선생님 돌아오실 때까지 농사 지어 먹고 살자, 응."

 

하고 정선도 새로운 눈물을 흘렸다.

 

"나도 다리만 성하면야, 남 하는 것 못할라구. 그렇지만 밭 김이야 못매겠니. 그것도 못하면 집에서 밥이야 짓겠지, 소나 먹이고."

 

하고 정선은 결심의 표로 입을 꼭 다물었다.

 

"을란아, 넌 소 먹이는 것 구경했지"?

 

하고 정선은 제가 소를 먹일 것을 생각하고 물었다.

 

"그럼요. 강가로 슬슬 끌고 다니며 풀을 뜯기고, 배가 부를 만하면 물을 먹이고 그러면 되지요, 별것 있나요, 머"?

 

"꼴을 누가 비나"?

 

하고, 정선은 남편이 꼴망태에 먹음직스러운 꼴을 베어서 메고 석양에 소를 끌고 돌아오던 것을 생각하였다.

 

"제가 꼴을 베면 남들이 웃을까"?

 

하고 을란이가 웃었다.

 

"커다란 계집애가 꼴을 베는 게 다 무어냐. 아이를 하나 얻어 둘까."

 

하고 정선도 웃었다.

 

이때에 작은갑이가 또 씨근거리고 달려왔다.

 

"한갑 어머니가 물에 빠져서 돌아가셨어요!"

 

하고 작은갑은 주먹으로 이마에 땀을 씻었다.

 

"네에"?

 

하고 정선은 펄쩍 뛰었다.

 

"어디서요? 언제"?

 

"아침에 가 보니까요, 안 계시단 말야요. 그래 어디를 가셨나 하고 찾아보아도 없거든요. 거 이상하다 하고 아까 댁에 왔다가 가는 길에, 암만해도 이상하길래 강가로 찾아가 보았더니 아, 그래, 여울에 무엇이 허연 것이 있길래 가 보니까 한갑 어머니겠지요. 그래서 들어가서 끌어내다 놓고 지금 주재소에 가서 말하고 오는 길입니다."

 

"아이 저를 어찌해."

 

하고 정선은 양미간을 찡그렸다.

 

"그래 시체는 어떡허셨어요"?

 

하고 정선은 일어나서 문설주에 몸을 기대고 아래 여울 쪽을 바라본다. 거기는 거뭇거뭇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다. 아마 순사들이 나온 모양이었다.

 

"시체는 주재소에서 묻으라고 해야 묻지요. 그러나 저러나 돈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어떻게 묶어다가 묻기는 해야 할 텐데."

 

하고 작은갑은 입맛을 쩍 다신다.

 

정선이가 십원 한 장을 작은갑에게 주어서 작은갑이가 널 하나를 사고, 유 산장네 집에서 베를 한 필 사서, 또 돌모룻집 영감과 쌍동 아버지가 염을 해서 한갑 어머니를 공동묘지에 갖다 묻었다. 그리고는, 동네에서는 한갑의 집을 흉가라고 해서 헐어버리자고 하였으나, 소유권자인 한갑의 말을 듣기 전에는 그리할 수 없다고 해서 내버려 두었다. 사람들은 낮에도 한갑의 집 앞을 지나가기를 꺼려서 될 수 있는 대로 멀리로 돌아다녔다.

 

작은갑은 형무소 맹한갑의 이름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지냈다는 말만 하고 어떤 모양으로 죽었다는 것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한갑이네 집에서 먹이던 개는 처치할 길이 없어서 정선이가 맡아서 기르기로 하였다. 두 귀가 넓적하고 잘 생긴 개였다. 다만 잘 얻어먹지를 못해서 뼈마디가 불툭불툭 내밀고 털도 곱지를 못하였다.

 

한갑이네 개는 곧 정선과 을란이에게 정이 들었다. 그러나 본래 숭이 집에서 자라던 바둑이라는 개한테는 눌려 지냈다. 한갑이네 개는 본래 이름이 없어서 섭섭이라고 을란이가 이름을 지었다. 주인집이 다 불쌍하게 되어서 섭섭하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