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선생은 정선을 데리고 아침 아홉시에 형무소에 갔다. 높은 벽돌담, 시커먼 철문, 조그마한 창으로 내다보는 무장한 간수의 무서운 눈, 그 앞에 면회하러 온 친족들, 늙은이, 젊은 여편네, 어린애를 안은 촌 부인네, 양복 입은 사람, 이러한 칠팔 인이 문 앞에 모여 있었다.

 

대서소에서 쓴 면회 청원과 차입 청원을 조그마한 창으로 들여밀고 제 차례가 돌아와 불러들이기를 기다리고 서성서성하고 있었다.

 

큰 철문 말고 작은 철문이 삐걱 열리고 무장한 간수의 전신이 나타나며,

 

"-."

 

하고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 저마다 제가 불린 듯하여 한두 걸음 문을 향하고 일제히 걸어 들어가다가, 정말 불린 사람만이 들어가는 것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고는 슬몃슬몃 뒤로 물러서서 또 왔다갔다하기를 시작한다. 그 동안 자건거를 타고 온 출입 상인들과 인력거를 타고 온 변호사들이 들어간다.

 

이리하기를 한 시간이나 한 뒤에 간수가 나타나며,

 

"한민교. 윤정선."

 

하고 부른다.

 

한 선생은 정선을 앞세우고 나무패 하나씩을 받아 들고 철문 속으로 들어갔다.

 

문에 들어서서 황토물 들인 옷을 입은 죄수들이 무슨 짐들을 가지고 개미떼 모양으로 오락가락하는 것을 보면서 마당을 건너 문을 열고 들어가면 형무소의 서무과다. 모두들 부채를 부치며 사무를 보고 있고, 면회 청원을 맡은 간수가 앞에 놓인 수없는 청원 중에서 한 장씩을 골라 뽑아 가지고는,

 

"무슨 일로 만나"?

 

"면회한 지가 아직 두 달이 못되었는데 또 면회를 해"?

 

이 모양으로 약간 귀찮은 듯이, 아무쪼록은 허하지 아니하려는 의사를 보이고, 면회하러 온 이는 멀리서 왔다는 둥, 꼭 만나야 할 채권 채무 관계가 있다는 둥 하여 아무쪼록 면회를 하려고 애걸을 한다.

 

한 선생과 정선은 여기서 기다린 지도 약 한 시간, 벽에 걸린 시계가 열한시를 가리킬 때에야 겨우 차례가 돌아왔다.

 

간수는 정선이가 가지고 온 재판장의 소개장을 내어 보이자,

 

"재판이 끝난 뒤에 재판장의 소개가 무슨 상관이오"?

 

하고 벽두에 트집을 잡았다.

 

"윤정선은 허숭의 호적상 아낸가"?

 

하고 간수는 정선을 바라보았다. 정선은 이 시골 형무소의 면회인 중에서는 보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정선의 이 아름다움과 그리고는 갖추어 있는 모양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네."

 

하고 정선은 일종의 모욕을 느끼면서도 순순하게 대답하였다.

 

"한민교는 무슨 일로 만나"?

 

하고 간수는 한 선생을 보았다.

 

"나는 허숭씨와는 친구요. 허숭씨가 복역 중에는 그집 살림을 돌볼 사람이 나밖에 없고, 또 백선희로 말하면 내가 가르친 학생인데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으니, 복역 중에 그의 재산 정리도 내가 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형편이외다. 그 까닭에 내가 서울서 위해 내려왔소이다."

 

하고 한 선생은 간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친족도 아니면서 만나자면 되나"?

 

하고 간수는 화를 내었으나 필경은 두 사람에게 다 면회를 허하였다.

 

"저 지하실에 내려가 기다려-."

 

하고 간수는 다른 청원서를 집었다.

 

한 선생과 정선은 다시 물품을 들이고 내어주고 하는 데 가서 차입했던 의복 기타 물품을 받아낼 수속을 하고 면회인들이 기다리는 지하실을 찾아 내려갔다.

 

유월의 지하실은 찌는 듯이 더웠다. 사람들은 제 차례를 기다리고 모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저마다 제가 찾아온 죄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쭈그러진 노파는 간수가 번뜻 보일 때마다,

 

"나으리, 나으리, 우리 아들 좀 만나게 해주시우. 삼백 리길을 늙은 것이 걸어 왔수다."

 

하고 부처님 앞에서 하는 모양으로 합장하고 절을 하였다.

 

간수는 본 체 만 체하고 면회 차례 된 사람을 데리고 들어갔다.

 

"자제는 무슨 죄로 와 있소"?

 

하고 어떤 양복 입은 청년이 묻는다.

 

"우리 아들이오? 우리 아들 좀 메뇌(면회)하게 해주세요."

 

하고 노파는 그 청년에게도 절을 한다.

 

이 노파는 귀가 절벽이었다. 여러 사람들은 심심파적으로 노파의 귀에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보고 손으로 시늉도 해보았으나, 뜻은 통하지 아니하고 다만 아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같은 소리를 할 뿐이었다.

 

이윽고 간수가 나와서 그 노파를 보고,

 

"안돼, 가!"

 

하고 일변 고개를 흔들고, 일변 손으로 가라는 뜻을 표하였다.

 

노파는 또 몇번 합장배례를 하였으나 간수에게 몰려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노파의 아들은 소작쟁의에 들었다가 농터를 떼운 한으로 지주의 집에 불을 놓은 청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