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살여울의 농민들은 이 동네 생긴 이래로 처음 당하는 견딜 수 없는 곤경을 당하였다. 집간, 논마지기, 밭낟갈이는 대부분 유정근이가 경영하는 식산조합의 채무 때문에 혹은 벌써 경매를 당하고, 혹은 가차압을 당하고, 혹은 지불 명령을 당하고 잃게 되었다.

 

빚을 얻어 쓰기가 쉬운 것과, 옛날의 신용대부 대신에 신식인 저당권 설정이라는 채권 채무의 형식은 가난한 농민들을 완전히 옭아 넣고 말았다. 숭이가 경영하던 협동조합이 농량과 병 치료비와 농구 사는 값밖에는 일체로 대부하지 아니하던 것을 야속히 여기던 살여울 농민들은 잔치 비용이거나 노름 밑천이거나를 물론하고 저당만 하면 꾸어 주는 유정근의 식산조합을 환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가엾은 농민들은 그것이 자기네의 자살 행위인 줄을 몰랐던 것이었다.

 

"도장만 찍으면 돈이 생긴다."

 

고 살여울 농민들이 생각하게 된 지 이태가 다 못하여 이제는 농량조차도 얻을 수가 없고, 오직 추수할 곡식을 저당으로 한 장리 벼만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

 

정근의 아버지 되는 유 산장은 아들의 수완에 절절 탄복하였다. 그래서 금년 봄부터는 모든 재산권을 전부 아들 정근에게 맡겼다.

 

유 산장네 재산은 숭이가 감옥에 들어간 동안에 삼배가 늘었다고도 하고 사 배가 늘었다고도 한다. 아무리 줄잡아도 갑절 이상이라는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정근은 숭의 집에서 좀더 올라간 곳에 별장이라고 일컫는 집을 짓고, 서울에 가서 고등보통학교까지 마치었다는 여학생을 첩으로 데려다가 금년 봄부터 살림을 차렸다. 도회의원에 선거될 모양으로 출마하였으나 돈만 몇천 원 없애고 낙선되고 만 것만이, 이 집의 유일한 실패였다.

 

그러나 불원간 면장이 될 것은 사실이라고 전하였고, 다음번에는 반드시 도회의원이 된다고도 하고, 또 동경 어떤 유력한 사람의 추천으로 불원간 군수가 되리란 말조차 있었다. 어찌되든지 유 산장집 운수는 끝없이 왕성하는 것 같이만 보였다.

 

그러나 이 동네에서 개벽 이래로 있어본 일 없는 차압이니, 경매니 하는 것을 당하게 되어 몇 푼어치 아니 되는 세간에 이상한 종잇조각이 붙고, 오늘까지 내 소유이던 것이 남의 손으로 끌려감을 당할 때에 받는 살여울 농민들의 가슴의 쓰라림은 비길 데가 없이 심각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하여 가는 정근에게 그 따위 민간의 불평은 한 센티멘탈리즘에 불과하였다. 혹시 불평하는 말을 하는 소작인이나 채무자가 있다고 하면 정근은 서슴지 않고,

 

"그것은 게으른 자의 핑계다. 약자의 비명이다. 내가 그대네에게 돈을 꾸어 준 것은 급한 때에 그대들을 도와 준 것이다. 남의 도움을 받았거든 감사한 줄을 알아라."

 

이 모양으로 대답할 것이다. 정근은 법률을 배우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무슨 일이든지 법률에 걸리지 않기를 힘쓴다. 정근은 이 세상에 법률밖에 무서운 무엇이 있는 줄을 알지 못한다. 그는 사람보다 몇 갑절이나 법률을 무서워한다. 무서워하는지라 그는 요리조리 법률을 피할 길을 찾는 것이다. 그의 정신의 전체는 "법의 그물을 피하여 돈을 모으는 것"에만 쓰였다.

 

그러나 정근에게도 한 걱정이 생겼다. 그것은 작은갑이의 만기 출옥이다.

 

정근이가 작은갑이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갑이가 돌아오면 자기의 횡포에 한 꺼림이 생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가 비록 보통학교밖에는 더 배운 것이 없고, 또 사람도 그렇게 잘난 편이 아니지마는 작은갑에게는 옳은 것을 위해서는 겁을 내지 아니하는 무서운 성질이 있었다. 그것은 힘으로 누르기도 어렵고 돈으로 사기도 어려운 성질이었다.

 

이를테면 작은갑은 좀 둔하면서도 강직한 벽창호였다. 정근은 작은갑과 어렸을 때의 동무로서 이 성질을 잘 알았다. 숭이가 작은갑에게서 본 것도 이 성질이었다. 정근은 작은갑의 이 성질이 싫고 무시무시하였다. 게다가 그는 감옥에서 삼년이나 닦여나지 아니하였나. 그는 검사정에서나 공판정에서,

 

"나는 모르오. 허숭이가 하라는 대로만 하였소."

 

한다든지,

 

"조선이 잘되고 어쩌고 하는 그런 것은 모르오, 돈이 생긴다니까 하였소."

 

하기만 하였던들 그는 백방(白放)이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나 우직한 작은갑은 어디까지든지 허숭과 동지인 것을 주장하였다. 검사와 예심판사의 유도함도 듣지 아니하였고, 공판정에서도 그대로 뻗대었다.

 

이것은 온 동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미친놈"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정근은 이러한 작은갑을 다만 미친놈이라고만 웃어버릴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