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갑은 정근의 학생 첩의 집이라는 데를 향하여 빨리 걸었다. 그 동안에도 작은갑은 동네 길들이 더러워진 것을 보았다. 가운데 불룩하던 길이 인제는 가운데가 우묵하게 패였다. 집들도 모두 윤을 잃었다. 숭이가 애써 이루어 놓았던 동네의 문명을 정근이가 모조리 깨뜨려버린 것이었다.
작은갑은 황혼 속에 귀신같이 서 있는 한갑이네 집을 보고 우뚝 발을 멈추었다. 그리고 이 집에서 일어난 모든 비극을 생각하였다. 그것이 모두 다 정근의 소위인 것을 생각하고 이를 갈았다.
작은갑은 한갑의 집을 지나서 보리밭과 삼밭 사이로 등성이를 올랐다. 거기 심었던 낙엽송이 모두 말라 죽은 것을 보았다.
마루터기에 올라서려 할 때에 작은갑은 눈앞에 희끗한 무엇을 보았다. 작은갑은 우뚝 섰다. 그 희끗한 것은 두 사람이었다.
작은갑은 길가 풀숲에 납작 엎드렸다. 그래 가지고는 사냥하는 사람 모양으로 가만가만히 기어올라갔다.
두 사람이 안고 섰는 양이 황혼빛에 희미하게, 그러나 윤곽만은 분명하게 하늘을 배경으로 나 떴다.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수없이 입을 맞추고 희롱하는 것이 보였다. 작은갑의 사지의 근육은 굳었다. 호흡도 굳었다.
"아이, 고만 놓으셔요."
하는 것은 분명히 작은갑의 아내의 음성이었다.
"내일도 오지"?
하는 것은 정근의 음성이었다.
"그럼요."
"작은갑이가 못 가게 하면 어찌할 테야"?
"아이 놓세요. 누가 보는 것 같애."
하고 여자는 몸을 빼어내려고 애를 썼다.
"흥, 오늘 밤에는 작은갑허구 오래간만에 정답게 잘 터이지."
하고 정근은 여자를 땅에 앉히려는 태도를 보였다.
"아이, 작은갑이가 보면 어떡허우"?
하고 여자는 애원하였다.
"그까짓놈 보면 대순가. 내가 주재소에 말 한마디만 하면 그놈 또 징역을 갈걸. 그놈 징역만 가면 우리 같이 살아, 응."
하고 정근은 여자를 번쩍 안아 들어서 땅에 내려놓는다.
"이놈아!"
하고 작은갑은 뛰어 나섰다.
정근은 서너 걸음 달아나다가 작은갑에게 붙들렸다. 작은갑은 정근의 멱살을 잡아서 끌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아내는 땅에 엎어진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가리우고 떨고 있었다.
"이놈아!"
하고 작은갑은 한 주먹을 높이 들었다.
"난 잘못한 것 없네."
하고 정근은 한 팔을 들어 작은갑의 주먹을 가리었다.
"내가 다 보았다. 저기 숨어서 내가 다 보았다."
하고 작은갑은 주먹으로 정근의 따귀를 서너 번 연거푸 갈겼다.
"아니, 아이구, 아이구."
하고 정근은 작은갑의 주먹을 피하며,
"아니야, 자네가 잘못 보았네, 가만 아이구 내 말을, 아이구 한마디만 듣게 아이구, 글쎄 아이구."
"이놈아. 네가 주둥이가 열 개가 있기로 무슨 할 말이 있어. 옳지 인제 내가 네놈을 죽이고야 말 터이다."
하고 작은갑은 정근을 땅에 자빠뜨려 놓고 타올라 앉았다.
작은갑과 정근이가 격투를 하는 동안에 작은갑의 처는 둘 중에 한 사람은 죽을 것을 두려워하여서 집으로 달려내려가 시아버님(돌모룻집 영감님)을 보고,
"아버님, 저 큰일났습니다. 둘이 큰 싸움이 났습니다."
하고 고하였다.
돌모룻집 영감님은 그 말에 벌써 누가 누구와 무슨 일로 싸우는지를 알았다. 그리고 영감님은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이 싸운다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리하여 가까스로 두 사람을 뜯어말렸다. 정근은 제 집으로 들어가고 작은갑은 아버지에게 끌려서 집으로 내려왔다. 영감님은 또 앞에 무슨 불길한 일이나 생기지 아니할까 하여 속으로 겁이 나고 "어서 죽어 버려야지" 하는 자탄을 발하였다. 영감님은 자기가 못났기 때문에 재산을 못 만들어서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큰소리 못하는 것이 부끄러웠다.
집에 돌아와 보니 작은갑도 목과 낯에 시퍼렇게 피진 곳이 여러 곳이요, 코피가 흘러 적삼 앞자락이 벌겋게 물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