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자기네 힘으로나 빼어 오는 것같이 작은갑과 선희를 옹위해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떠들고, 웃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는 또 떠들고 웃었다.
"아이 정선이!"
하고 선희는 정선이가 절뚝거리고 오는 것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뛰어와서 파라솔을 풀밭에 내던지고 정선을 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안고 울었다.
작은갑이가 정선에게 인사를 할 때에 정선은 일변 눈물을 씻으면서 허리를 굽혔다. 그러나 목이 메어서 말이 나오지를 아니하였다.
작은갑이와 젊은 사람들은 세 여자에게 자유로 울 기회를 주려는 듯이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정선과 선희는 언제까지나 서로 안고 울었다. 곁에 을란이도 앞치맛자락으로 낯을 가리우고 머리꼬리를 물결 지으면서 울었다.
선희는 한참이나 정선을 안고 울다가 정선에게서 물러나 정선의 화장 아니한 볕에 그을은 얼굴, 목지지미 치마에 굵은 모시 적삼을 걸친 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친 듯한 열정으로 정선의 목을 안고 수없이 그 입을 맞추었다.
"정선이가 더 이뻐졌구나."
하고 선희는 다시 정선에게서 물러서며 히스테리칼하게 웃었다.
"허 선생 면회하고 왔다. 안녕하시더라. 난 꼭 삼년 만에 뵈었는데 몸이 좀 부대하신 것 같으시어, 정선이 보거든 잘 있으니 염려 말라고 그러라고. 나는 집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꼭 한모양이라고 말하라고, 학교에 있을 때보다 공부가 많이 된다고.
서양 유학하는 셈치고 있다고 그러라고, 이태가 더 있어야 졸업이라고, 졸업하고 가거든 새 지식을 가지고 일할 터이니 그동안에 정선이는 건강과 용기를 기르고 있으라고. 광명한 앞길을 바라보고 아예 어두운, 슬픈 생각을 말라고. 그리고 또 무에라고 하셨드라-오, 옳지 친정에 한번 다녀오라고. 정선이 친정 아버지께서 감옥으로 편지를 하더라고. 필적이 떨리신 것을 보니까 퍽 노쇠하신 모양이니 얼른 가 뵈이라고."
"안 가."
하고 정선은 서울 쪽을 바라보며 눈을 끔적끔적하고 어린애 모양으로 고개를 도리도리하여 보인다.
선희는 말을 이어,
"그리구, 그리구."
하고 잊어버린 말을 생각하다가,
"오 참."
하고 을란의 손을 잡으며 선희는,
"을란이가 이제는 나이가 많았으니 적당한 신랑을 구해서 시집을 보내라고. 서울로 보내든지 살여울서 혼처를 구하든지, 정선이가 을란이 어머니가 되어서 잘 골라서 시집을 보내라고."
"안 가요. 전 집에 있을 테야요."
하고 을란은 고개를 숙이고 정선의 치마꼬리를 만진다.
정선은 을란의 어깨에 올라앉은 귀뚜라미를 집어 던지며 말없이 한숨을 쉰다.
"오 그리구 또, 저, 아이구 무슨 말씀을 또 하시더라."
하고 선희는 말을 잊어버린다.
세 여자가 울고 이야기하는 동안에 날은 아주 저물어 남빛 어두움이 달냇벌을 덮었다.
"을란아, 밥."
하고 정선이 놀렸다.
"아이구마."
하고 을란이가 집을 향하고 달려간다.
정선과 선희도 집을 향하고 걷기를 시작한다.
몇 걸음을 가다가 정선이가 우뚝 서며,
"선희, 순이 무덤이 저기라우."
하고 선희에게 시루봉 기슭을 가리켰다.
선희는 깜짝 놀라는 빛으로 정선이가 가리키는 데를 본다.
그러나 어두움은 완전히 유순의 무덤을 가리어버리고 말았다.
"한갑 어머니 무덤두 저기구."
하고 정선은 또한번 그 곳을 가리켰다.
선희는 두 무덤이 있다는 쪽을 향하여 이윽히 묵상하였다.
시루봉의 원추형인 윤곽이 마치 한 큰 무덤인 것과 같이 남은 빛에 하늘에 우뚝 솟아 있었다.
그 봉우리, 그 위에는 새로 눈 뜨는 별 하나가 반짝거렸다.
"불쌍한 순이 누운 곳이 저기라네.
무덤은 아니 보이고,
저녁 하늘에 별 하나만 깜박인다"
선희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그것으로 시를 만들어 유순의 무덤에 새겨 세울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선희와 정선은 동네 사람들을 피하여 동네를 돌아서 집으로 향하였다.